피자. 오븐이나 화덕에서 갓 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자. 길거리 어디선가 피자 냄새가 피어오른다. 탄수화물이 맛 좋게 그을어 내는 빵 굽는 냄새와 쫄깃하고 퐁신거리는 식감의 도우, 부드럽게 녹아서 주욱 늘어나 끊어지지 않는 쫄깃한 치즈, 빨갛게 시선을 자극하고 새콤달콤 감칠맛을 내는 토마토소스, 이 세 가지가 만나면 더 이상 다른 토핑은 필요가 없어진다. 우연히 피자 냄새를 맡게 되면 나는 내 안의 기억으로 빨려들어간다.
우리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피자였어.
피자를 먹을 때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주면 놀란다. 노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피자라니, 영 상상이 안가는 모습일 것이고, 나도 간혹 신기해하곤 했다. 우리 할머니는 피자에 진심이었다. 시골에서 내가 사는 수원으로 올라오게 되는 날이면 꼭 외식으로 피자헛이나 미스터피자엘 갔었고, 우리 역시 시골에 내려가는 길에 읍내에 들러 피자를 사 갔다. 할머니 집은 배달이 되는 곳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근방 몇 킬로미터 내외에는 온통 논과 밭뿐인 시골 중의 시골이었기에 피자를 사 가는 길에 피자가 다 식어버리곤 했지만, 그마저도 참 잘 드셨었다.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혼자서도 한 번씩 할머니댁에 놀러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꼭 챙겨가는 것이 바로 피자 재료들이었다. 지금은 맛있는 레토르트 피자들이 많지만 몇년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다. 도우를 대체할 또띠아와 시판 스파게티 소스에 다진고기와 야채 등을 넣어 직접 졸인 토마토소스, 피자치즈, 베이컨, 양파, 빼놓을 수 없는 갈릭디핑소스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새우살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주셨고, 나는 싸 온 재료를 차곡차곡 올려 전자레인지에 데워 또띠아피자를 만들었다. 서로 마주한 식탁에 또띠아피자와 새우된장찌개가 동시에 올라왔다. 내가 피자 두판 정도 더 만들어 랩을 씌운 뒤 냉동고에 얼려놓으면, 할머니는 내가 다시 수원으로 올라간 뒤에 한 번씩 꺼내어 데워 드셨다.
여느 때와 같이 또띠아 피자를 냉동고에 얼려놓고 수원으로 올라간 날로부터 일주일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터라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가족이 내가 되었다. 일주일 전 할머니를 보러 다녀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귀찮았던 마음을 누르고 피자를 만들어 드리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 정신없이 조문객들에게 인사하는 데, 한 할머니 친구분 한 분이 나를 보시자마자 우셨다.
“며칠 전 할머니 집에 놀러 갔는데, 손녀가 피자 만들어놓고 갔다고 엄청나게 자랑하더라고. 맛있는데 아까워서 조금씩 꺼내 먹는다고. 그 손녀가 너였구나, 아휴.”
나는 할머니 친구분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피자가 우리 할머니의 자랑거리가 되었구나, 참 다행이었다.
마트에 들러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 맛있어 보이는 레토르트 피자를 발견했다. 치즈가 듬뿍 들어갔다는 냉동 피자 하나 집어 카트에 넣으면서 여지없이 할머니를 떠올린다. 전자레인지 앞에서 치즈가 녹기를 기다리는 할머니, 온갖 재료들이 뭉근이 익어 내는 피자의 냄새, 뜨끈하게 데운 피자 한 조각을 할머니가 먹는 상상, 그래도 네가 만들어 준 게 더 맛있다, 뿌듯해지는 상상까지 더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