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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이 Sep 15. 2024

먹고 토하면 날씬해지긴 하는데

나의 식이장애 이야기

내가 먹토를 시작한 건 19살 즈음이었다. 예체능 입시 학원을 다니던 나는 학원에서 매주 같은 요일에 체중을 재었다. 만약 체중이 늘었거나 선생님이 말씀하신 몸무게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에는 1층부터 5층까지의 계단을 스무 번 왕복으로 뛰어다니고 발바닥에 매를 맞았다. 크게 불만은 없었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때는 체중 감량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고 실제로 효과도 있어서 마른 체중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연습을 하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선생님 몰래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는 살찔게 무서워서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 함께 다른 칸에서 토를 하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기괴한 장면이다. 그게 나의 먹토의 시작이었다.


매일 토하지는 않았다. 절식을 유지하다가 한 번씩 폭식을 할 때면 이따금씩 토를 하고는 했다. 먹토를 하고 나면 여태까지 내가 노력한 것들이 무산이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고는 했다. 나는 그렇게 26살까지 먹토를 했다. 총 7년간 먹토를 해온 것이다.


먹토를 안 해본 사람들은 먹고 토하려면 입 안에 손가락을 넣고 쑤셔야 하니 손에 상처도 있을 것이고 누가 봐도 티가 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오산이다. 요령만 있다면 구역질하는 소리도 없이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않고 먹을 음식을 온전히 토해낼 수도 있다. 얼굴에 변형도 절대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일어나지 않는다. 증량은커녕 감량이 된다. 먹고 싶은 음식을 모조리 먹을 수 있는데 살이 찌긴커녕 빠지니 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토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몸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먹토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니 내 몸은 서서히 망가져갔다.


먹토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일단 지금 나는 감기에 한번 걸리면 정말 오랜 시간 낫지 않는다.


기관지가 약해져서인지 잔기침이 낫는데 정말 오래 걸리고 3주에서 4주 정도는 앓는다. 더 심한 경우에는 말을 거의 할 수가 없다. 자꾸만 침이 역류를 해서 잔기침이 나와서 숨이 차고 말하는 게 힘들다. 그래서 감기에 한번 걸리면 진이 다 빠진다. 또한 감기에 걸려서 잘 챙겨 먹어야 할 때 나는 고기나 생선, 쌀조차 먹기가 무섭다. 뭘 먹어도 소화 못할까 봐 무섭고 간장 종지만큼 먹어도 구역감에 속이 더부룩하다.


그리고 입냄새가 많이 난다.


평상시에는 입냄새가 나지 않지만 양파나 마늘 같은 향이 강한 음식을 먹으면 침이 나도 모르게 역류해서인지 남들보다 확실히 먹은 음식 냄새가 많이 나고(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나 스스로도 역류되는 침의 향을 참기가 힘들다(나는 향에 절대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종종 먹토를 주제로 한 영상이 유튜브에 뜨곤 한다. 간혹 몇 개의 영상은 '나는 살을 현재 많이 뺐고, 그 과정에서 먹토를 했지만 현재는 먹토를 하지는 않는다. 여러분들이 먹토 하기를 유도하는 건 아니다.'라는 영상이 뜨곤 한다. 난 영상을 보고 정말 의아했다. 영상의 내용은 다이어트 성공과 관련된 영상이고 그 과정에서 큰 영향을 준게 먹토라는 내용인데 이게 정말 시청자들에게 먹토를 유도하지 않는 영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아니다. 성인도 먹토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정말 힘든데 미성년자 친구들이 이런 영상을 한다면 더욱이 그럴 것이다.


내가 먹토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온지라 저런 영상을 보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누군가 나와 같이 몸을 망쳐버릴까 봐. 스스로를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행동을 할까 봐.


나는 지금도 위내시경을 해보기가 무섭다. 한번 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두려운 마음에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다. 이 영상을 보고 '나는 먹토 해도 괜찮던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당장 멈추시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몸이 망가지는 순간은 다르겠지만 그 순간이 오면 돌이키기 힘들다.


먹고 살찌더라도 절대 먹토를 해서는 안된다. 먹는 대로 체중이 증가하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우리 몸의 당연한 순환이다. 그 순환을 무시하면 몸이 망가지더라.


식사를 건강한 식단으로 바꿔보고 조금씩 운동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아무도 모르는 순간마저도 스스로를 존엄하게 대하고 아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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