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는 둘 모두 패자다.
옛날 옛적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로 시작되는 이솝 우화를 다들 한 번 쯤은 읽어보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시작해 달리다가 토끼는 경주 도중에 한숨 잠이나 자자 하고 잠에 들었고, 그 사이에 거북이는 토끼를 추월해 결승점에 먼저 골인한다는, 느리더라도 꾸준한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교훈을 주는 유명한 우화다.
부제목에도 적었듯이 나는 이 우화에 등장하는 토끼와 거북이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둘 모두 패자라는 - 둘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만한 - 사실을 전달해주고 싶다.
아니 어째서? 거북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끼를 이긴 것이 아닌가, 그래서 느리더라도 꾸준한 사람이 이긴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법하다. 여기서 나의 이솝 우화 뒤집기는 시작된다.
본래 토끼는 땅에서 뛰는 것이 최적화된 동물이다. 그리고 거북이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에 최적화된 동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땅에서 경주를 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난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낀다.
거북이는 원래 물에서 ‘물 만난 물고기 마냥’ 헤엄쳐 다니는 생물인데 왜 땅에서 경쟁을 시작하냐는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2024년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넘어서서 그들의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다른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야하는 시대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대를 거쳐 온 우리나라의 경쟁 구도는 여전히 같다. 여전히 같은 과목으로 줄을 세워 경쟁하고, 좋은 학교, 좋은 대기업, 좋은 배우자를 만나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서 아직도 여겨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각자가 토끼일수도 있지만 토끼가 아닐 수도 있다. 각자가 사슴일수도, 닭일수도, 독수리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그래, 각자가 다른 동물일 수도 있다는 것은 맞다고 손치더라도 그렇다면 꾸준함에 대한 미덕 자체는 찬사를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꾸준함에 대한 미덕 자체까지 뒤집자고 내가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하지만 도중에 잠을 잔 토끼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해야만 할까?
우리나라 대졸자의 400만 이상이 ‘그냥 쉼’ 상태를 선언하면서 역대 최다의 비경제활동인구를 기록했다는 소식마저 들려온다.
게으른 사람에 대해서 유난히 많이 비난을 하는 우리 나라의 노동 환경 상 ‘그냥 쉼’ 상태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걱정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2030세대 입장에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도 쉴 권리가 있다고. 무조건적으로 나라를 굴러가게 만들던 70년대의 노동환경과 사회풍조는 이제 지나지 않았냐고.
불만을 이야기하기만 한다면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생각하고 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앞길에 대해서 마치 경주마처럼, 입시만을 향해 달려오던 시대와는 다른 차원의 세대가 되려면 이런 시간 또한 필요한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