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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휘 Nov 03. 2024

1악장 (1)

신세계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비 내리는 날 상여가 나간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곡소리가 상여를 뒤덮는다.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른 사람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도왔던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의 울음과 함께 하늘로 떠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1598년 전쟁은 끝이 났다. 국토가 황무지와 다를 바 없어졌고, 오랜 기간 겪은 전쟁 탓에 사람들의 숫자는 현격히 적어졌다. 사람들은 지쳐갔다.


 혁명은 그 때 일어났다. 


 나라가 뒤집어지는 일은 백성들의 속앓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정이 보름 만에 한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피난했으며, 이어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퇴각했다는 이야기,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의 이야기, 광해군이 1608년 왕위에 올라 실리외교를 추구하고 있었을 때 서인들은 인조반정을 도모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광해군이 폐위되었다는 이야기가 백성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전쟁 당시 도망쳤던 왕보다 훨씬 현명한 왕을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이 폐위시켰다는 공분은 백성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동시에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워 지역의 인망을 얻은 승려들은 새로운 국가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관군에 흡수되었던 의병장들에게로 달려 간 승려들은 새로운 국가의 원수가 되어달라 계속해서 요청했다.


 그 중 인조 반정 소식을 듣고 이 씨 왕조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한 의병장은 자신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 씨 왕조였던 조선이 무너진다.


 순하다 순()을 건국된 나라.

 

 순 나라.


 국가의 순항을 바라는 태조의 희망과 염려가 담긴 이름이었다.

 조선의 이념적 구심점이었던 유교 사상에서 탈피해 불교 사상이 다시금 국가의 종교적 구심점이 되었다. 나라는 옛 조선에서의 부조리를 혁파하는 개혁이 함께 단행되면서 국가의 모습을 형성해 나갔다. 조선과 달리 순 나라는 여성의 정치 참여를 당연시하기 시작했다. 많은 인재의 기용을 성별이 막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귀족 가문의 여식들이 점점 정계에 하나 둘씩 기용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사회적으로는 고려 시대와 비슷한 양상을 띠었는데,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하여 사람의 신분 차이가 존재하였지만, 조선에 비해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를 띄고 있어, 시험을 통해서나 성과에 따라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모든 죽음이 그러하듯 허망했다. 아직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의 장례는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하지만 나는 비척비척 일어나 내가 사랑하는 그 곳으로 갔다.


 나의 고장 안평도(安平道)는 척박했다. 지세 또한 험했다. 평야보다는 산이 우세한 지역이었고, 지세가 험한 만큼 다른 지역의 산물이나 각종 공물들의 출입이 그다지 원활하지 못했다. 이 곳이 조선이었을 적보다 길이 많이 닦였다고는 했지만, 안평도에 사는 사람의 숫자는 적었고 사람이 살기엔 척박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안평도는 도망자의 땅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는 탓에 으레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기 일쑤였고, 그 스산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접근을 꺼리게 했다. 그 스산한 분위기는 도망자들에게, 사람을 피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설적이게도 꼭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이 내가 나고 자란 곳이었다. 평탄하고 편안한 곳을 그리며 살게 되는 곳. 안평도.


 안평도 척박한 땅의 한 편 작게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순(順) 나라의 다른 해안 지역보다는 매우 좁았지만 그래도 바깥의 소식을 조금씩 전해 듣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바닷바람이 살랑이는 이곳을 참 좋아했다. 척박해도 안평도는 내가 나고 자란 곳이었고, 나는 내가 태어난 이 곳을 사랑했다. 나는 이 곳에서 사람을 배웠고 가난을 체험했으며 아픔을 들었고 바깥소식을 접했다. 작게나마 닿아있는 바다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외국의 신선한 이야기들은 바다를 마주보고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보다 훨씬 좋았다. 그래서 척박하고 살기 힘든 곳이지만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새 세상이 올 것이라고 나는 항상 마음을 가다듬었다. 




[참고 문헌]

위키피디아 임진왜란 한국어판

위키피디아 광해군 한국어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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