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로부터
허나 안평도라고 해서 국가의 부패의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안평도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물자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데다가 사람도 적어서 먹고 살기에는 더없이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비율이 다른 고장에 비해 더 높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먹을 것이 없었고, 몸 뉘일 곳도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나는 분노를 느꼈다. 어째서 도망자의 땅이라 낙인찍힌 나의 고향은 지금의 삶에서도 도망치게 만드는 것인지. 울음을 삼키는 날이 많아질 수록 나의 눈에는 텅 빈 동굴이 들어찼다.
바다 건너 저 먼 곳 어딘가에는 각자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있다던데. 그 곳은 여기만큼 지옥 같지는 않겠지.
그렇게 바닷바람이 싣고 온 희망으로만 몸과 마음을 채우기엔 헛헛한 현실이 계속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어머니는 민 씨 아주머니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온 뒤였다.
“원아.”
“네?”
“잠깐 이리 앉아보거라.”
어머니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장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손 때가 묻어 끝이 헤져버린 일기들이 몇 권 어머니의 손에 들려있었다.
“원아. 이 일기를 꼭 간직해야한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이 일기를 받아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이 일기는 어머니의 유품이 되어버렸지만.
이 손 때 묻은 일기에 어머니의 온기가 혹여나 조금이라도 묻어있을까 가슴에 품어본다.
‘잠깐,‘
일기에 책갈피 같은 것이 꽂혀있었다. 책갈피라고 하기엔 쪽지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일기보다는 종이가 새 것 같아보였고 쪽지 모양으로 고이 접혀있었다.
‘원아, 보아라,’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 쪽지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필체로 적힌 편지였다. 눈물이 절로 나왔다. 어머니께서 남기신 편지였다. 왜 나는 이 편지를 읽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탓하던 찰나, 미심쩍은 문구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원아, 이 편지를 보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겠지.’
어머니가 당신의 죽음을 예측하고 있었다.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