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느끼는 나의 소회
글을 최대한 담백하게 쓰려는 나의 의지와 잘 쓰고 싶은 나의 바람은 언제나 상충한다. 더 잘 쓰고자 하면 미사여구를 더 넣게 되고, 그 미사여구 때문에 글은 더 더러워진다.
다소 격한(?) 표현일 수 있지만 나의 글에 대한 나의 총평은 이러하다.
지금 쓰고 있는 ‘신세계로부터’ 글의 플롯은 다 정해놓았지만 그 때 그 때 수정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추가되기도 하고, 좋은 아이디어는 첨가되기도 한다.
아직은 나의 첫 작이라서 그런지 내가 스스로 하면서도 어색하다. 이게 잘 해나가고 있는 건지, 원래 이런 식으로 하는 건지, 이래서 학원을 다니는 건지, 나는 달리 물어볼 데가 없어서 혼자 좌충우돌한다.
하지만 쓸 때 만큼은 막힘이 없다. 일단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쭉쭉 써내려간다.
나의 창작활동은 주로 지하철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동시간이 1시간 정도 되는데, 그 무료한 시간을 책을 읽으면서 보내기엔 너무나도 큰 집중력을 요하고, 그렇다고 멍하니 있기엔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창작활동이 시작되었는데 꽤나 괜찮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한 군데에 박혀 무언가를 뽑아내는 것보다는 움직이면서 머리를 식히면서 해내는 것이 훨씬 나에게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오늘 철학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늘 철학 강의에서 연기학과를 다니는 한 학우가 자신이 연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계속 하고 싶어지는 것이 연기였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라고.
어쩌면 나에게는 연기보다는 글쓰기가 그런 것에 가깝지 않나 싶다.
연기도 하고 싶지만 외모가 그다지 빼어나지도 않고, 연기를 시작하기에는 나이도 너무 많거니와, 나의 것을 뽑아내는, 감정의 표현이 오랜 기간 억눌려 있는 것이 많은 것을 겪어야만 연기가 늘 것 같다는 핑계가 줄을 이루는 나를 보면서 어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춤주춤하게 된다. 연기는 어쩌면 오히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시도를 해볼지도 모르겠다.
한편 바쁜 일상에서도 글 쓰기를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위안이 된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조금이나마 하고 있다는, 놓지 않고 있다는 나의 의지의 표현을 매일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할 것들에 휩싸여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은데 글을 쓸 때 만큼은 치열하게 나를 사유해야하고 고민해야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나는 나를 표현할 만한
나의 자아가 많이 형성되어있는가?
사실 나의 내적 자양분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경험한 것이라고는 12년 간의 학교 생활과 긴 수험생활, 잠시 동안의 알바와 직장 생활(뭐 굳이 넣자면 쉼터에서의 생활) 정도 밖에는 없어서 사실 이렇다 할 소재다운 소재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아서 세상지사 많은 경험들을 통해 인간의 감정에 대해 박학다식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물론 우울증과 공황장애 때문에 알게 된 인간의 깊은 내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그것도 거기까지. 이제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대해 고백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희소성도 없는 소재가 되어버렸다)
부정적인 나의 모습이 좀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긍정적인 나의 모습도 인정해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정신과 선생님이 그러셨다.
부정적 자아보다 긍정적 자아가 더 커질 날이 올거라고.
그렇게 말하시면서 그럴 거라고 의연하고 차분하게 조곤조곤 이야기해주시는 말씀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다. 말에 담긴 힘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느덧 5시만 넘어도 해가 뉘엿뉘엿 지는 걸 볼 수 있는 11월도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간이란 왜 이리 빠른지 2024년도 어느새 1달하고도 2주 좀 넘게 밖에는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해나가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할 일도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