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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차려 모지리 Nov 18. 2024

대중에게 인터넷 여론 조작은 아직 호러가 아니다

<댓글부대> 리뷰

대중에게 인터넷 여론 조작은 아직 호러가 아니다

<댓글부대>의 장르는, 사회드라마보다는 인터넷 호러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가 재현하는 인터넷은 개구리 페페 밈을 유독 즐겨 쓰는 유저들이 밀집한 기만과 선동의 공간이며, 주인공 임상진 기자는 거기에 갇혀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정서적인 관계를 맺지 않아요. 상진이 오프라인에서 여론을 가늠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신문사 데스크에서 어떻게 여론을 집계하는지도 보여주지 않고요. 물론 오프라인이 표면적인 사회활동의 장인 반면, 온라인은 결투의 공간으로서 그곳에서 쉽게 주장이 오가는 것은 맞습니다. 유저들은 서로의 개그 코드, 피해자성, 계급, 이념을 겨룹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커뮤니티를 하는 유저들이 아닌 ‘보통’의 사람들은 인터넷 속 타인들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기사나 웹툰을 보거나, sns 피드를 훑을 뿐이죠. 그들은 댓글창의 선동꾼을 실재하는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악플러 비슷하게 어떤 캐릭터로 취급합니다. 그들에게 선동꾼은 아직 호러보다는 코미디 장르에 속해 있습니다. 원작자 장강명과 감독은 아마 오프라인에서도 텍스트 위주의 대화를 하는 이들 같고, 그래서 온라인 상의 텍스트들을 더욱 위협적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비관적인 음모론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를 음모론 취급당하지 않기 위해 남초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인터넷 속 ‘보통’의 사람들을 더 많이 비췄어야 했습니다. 물론 촛불 집회의 기원을 통해 인터넷의 영향력을 보여주려 노력했으나, 본 내용과 동떨어져서 마치 시리즈물의 1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스릴러 같은 화면의 톤과 인터넷 푸티지의 연출 방식도 소재에 대한 제작진의 부정적인 시각을 잘못 암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해설자로만 기능하는 주인공

<댓글부대>는 이야기의 작법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비슷한 소재의 <서치>와 <타겟>은 1인칭 시점을 택해 감정이입을 유도하지만, 이 영화의 상진과 찻탓캇은 액자 내/외부 이야기의 해설자로만 기능합니다. 이입할 여자가 부족하죠. 상진은 자신의 일자리를 걸고 취재를 계속할 정도로 정의로운 인물이지만 그런 직업정신과 취재 동기는 그의 머릿속에만 있을 뿐, 극 중에서 표현되지 않습니다. 부실하게 취재했다고 상사에게 혼나고, 기사 나간 아침에 뒤통수를 맞는 장면들만 이어집니다. 1인칭 스릴러도, 장르성을 살린 케이퍼 무비도, 피카레스크 극도 아닙니다. 인물이 아닌 인터넷 속 현상묘사에 집중하려고 한 것이라면, 블랙코미디 군상극 <돈룩업>처럼 동시다발적인 상황들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고 ‘소격 효과’를 주거나, <Spree>같이 리얼 타임으로 한 에피소드만 다뤘다면 효과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선동꾼들의 심리와 이들의 통찰에 집중했더라면

극 중 제일 감정이 읽혔던 인물은 팹택(홍경)이었습니다. 찡뻤킹(김성철)이 쏟아내는 말과, 울먹이며 대꾸하는 팹택의 대사에서 그의 캐릭터를 알 수 있었습니다. 

 

네가 세상을 좇같이 보니까 이렇게 되는 거 아니야. 네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남들 평가하고. 그거 다 니 병신인 거 들키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인정받고 싶은 관종? 그건 너겠지. 

 

팹택은 분명, 인터넷 유저들의 욕망이나 결핍, 주로 펼치는 논리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통찰의 일종입니다. 시사IN의 <20대 남자> 탐사 보도나, <인셀 테러>같은 저널리즘이나 사회학자가 연상 됐습니다. 팹택은 분석에서 나아가 그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선동했고, 결핍을 통해 무너뜨렸습니다. 특정 성별/계층의 말투를 흉내 내 게시글을 작성하고 적당한 사이트에 퍼 나르는 ‘주작질’은 마치 창작 행위 같았죠. 하지만 팹택에겐 ‘주작질’을 하는 의도와 동기가 없었습니다. 있어봤자, ‘하찮은 것들을 비웃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웃음은 본인을 더 나아 보이게 만들었겠죠. 그래서 그가 ‘주작질’을 통해 만들어내려는 상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기업체의 정규직(?)이 되면서 범법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되었을 테고요. 이런 팹택의 변질에선 ‘인턴’이라는 경험의 값으로 기업에 MZ의 정체성을 제공하는 젊은 세대가 연상됩니다. 그래서 만약 제가 <댓글부대>를 각색 한다고 가정해 보자면, 팹택을 주인공으로 삼을 것입니다. 자살로 친구를 잃고 <우리손자베스트>의 교환처럼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은둔 청년 팹택이 대기업에 스카웃 되면서, 자신이 커뮤니티 속에서 부르짖던 이념이 허상이었음을 알아 가는 성장기가 상상됩니다.


2024. 10. 18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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