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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2. 2024

소리를 지르다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12화 - 소리를 지르다

밥상 앞에 혼자 아침 식사를 마친 현수는 밥상을 한쪽 켠으로 밀어놓는다.

현수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출근 복장을 하고 나와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부스스한 머리 모양의 혜진이 이부자리에 누워있다.

미라가 안방으로 들어서자, 혜진은 일어나 앉는다.

“엄마, 아빠는?”

“응, 회사 갔어요.”


미라는 혜진을 보면서 진지하게 묻는다.

“혜진이는 공부 안 할 때는 머리 안 아파.”

“아니, 안 아파.”

“유치원에서 공부할 때 머리 아파? 안 아파?”

“안 아파.”

“혜진이 엄마하고 병원 가서 진짜로 머리가 아픈지 가짜로 아픈지 머리  사진 찍어볼까?”

“머리 사진?”

“그래, 머리 속을 보는 사진.”

혜진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지 못한다.

“공부하기 싫으면 엄마한테 공부하기 싫다고 말해.”

“그럼, 병원 안 가도 돼?”

미라가 웃으며 혜진에게 말한다.

“그래.” 


 

인주는 TV 앞에서 동요 프로그램을 보며 몸을 끄떡거리고 있다. 

미라와 혜진은 누워있고, 한주는 모로 누워있는 미라를 짚고 서서 TV를 보고 있다.

미라가 누운 채 말을 한다.

“어린이들, 잡시다. 10시가 다 되었어요.”

혜진 역시 누운 채 미라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 언제 와?”

“글쎄.”


현관문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은 미라가 아이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지금부터 눈 감고 잘 거야.”

어제 일로 현수와 서먹한 미라는 눈을 감고 자는 척한다.

  

현관문으로 현수가 들어온다. 현수는 작은방으로 곧장 들어 갈려다가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안방을 빼꼼히 본다.

잠자는 미라, 그리고 스스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술을 마신 현수의 마음이 짠하다. 그래서 현수는 마음을 바꿔 먹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한주는 누워있는 미라를 짚고 서서 현수를 바라보며 반갑다고 몸을 끄떡거린다.

TV를 보고 있는 인주는 안방으로 들어오는 현수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TV에 집중한다.

술을 마신 현수는 장롱 앞에 누운 혜진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혜진과 장롱 사이의 좁은 틈을 파고들어 혜진을 바라보며 모로 눕는다.

“아이, 술 냄새.”

현수에게서 나는 술냄새에 손가락으로 코를 잡는다.

“술 냄새나서 아빠 미워?”

“아니.”

“혜진이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

“응.”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응, 해줘.”

술을 마신 현수가 두서없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에 코끼리가 바닷가에 캠핑을 갔대.”

“캠핑이 뭐야?”

“밥 해 먹으면서 노는 거.” 

강동 날라리 혜진이 또 하나의 노는 단어를 배운다.

“재미있겠다. 캠핑.”

현수가 횡설수설 말을 이어간다.

“코끼리가 캠핑 가서 상어를 꼬셨대. 아니 상어를 만났대.”

“코끼리 아저씨가 고래 아줌마와 결혼한 것이 아니고?”

“그래, 맞아. 상어랑은 재미없어서 헤어지고 고래 아줌마랑 결혼했대.”

혜진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듯 말한다.

“결혼할 때 문어 아저씨가 왔지~?”

“문어 아저씨? 그래 왔다고 쳐, 토끼도 와서 춤추고 여우도 와서 노래를 불렀어.”

“여우는 바이올린 아니고?”

자꾸 끼어드는 혜진에게 독점적 존재감을 과시하는 현수.

“혜진이가 자꾸만 이야기하면 아빠가 헷갈리잖아, 너가 이야기할래?”

“아니, 아빠가 해줘.”


돌아 누워 잠자는 척하는 미라가 웃음을 참지 못해 어깨를 들썩인다.

미라가 잠자는 척한다는 것을 확인한 현수,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코끼리가 고래하고 결혼해서 사슴하고 코알라 이렇게 두 마리를 낳았대.”

“두 마리 낳았어? 우리 집은 세 마리인데.”

장난기가 발동한 현수, 이야기가 막 나가기 시작한다.

“아, 그렇지, 우리 집은 세 마리지, 백설공주, 똥강아지, 찹쌀 궁뎅이, 이렇게 세 마리.”

자는 척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미라, 현수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혜진이 안타깝다.

“혜진아, 이 때는 세 마리가 아니라 세 명이라고 하는 거야. 아빠 말 듣지 마, 아빠 말 들으면 바보 된다.”

‘바보’라는 말에 진지해진 혜진. 

“그럼, 아빠가 바보야?”

“그래, 아빠는 술 마셨기 때문에 바보가 되고 있어.”

혜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빠가 바보 된대.”

혜진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현수가 말한다. 

“그럼 이야기 그만할까?”

“아니, 듣고 싶어.”

‘바보’가 된 현수가 미라에게 보복을 시작한다.

“그래, 우리 집에 아기가 하나 더 생겼어, 그럼, 몇 마리?”

“네 마리? 아니, 네 명. 그런데 우리 집에 아기 하나 더 생겨?”

“응, 한주 동생, 한주에게 동생 만들어줘야지.”


그 말을 들은 미라는 돌아 누운 채 작은 아기 베개를 현수에게 던진다.

현수가 통쾌하게 웃는다.

한주는 미라가 베개를 던지는 것을 보고 미라 옆에 있는 밥주걱을 주워서 미라에게 내민다.

아이들을 다스리는 밥주걱을 한주로부터 받은 미라, 일어나서 앉는다.

그리고 기특한 한주의 행동에 몸을 앞으로 숙여가며 웃는다.

현수는 누워 있다가 앉으면서 한주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이 배신자. 내가 너 동생 만들어 주려고 이러는데, 너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현수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는 미라는 애써 평정을 찾으며 인주에게 말한다.

“인주야, 바보 아닌 사람은 너밖에 없다. 이리 와서 어서 자자.”


현수가 웃으면서 일어나 안방에서 나간다.


 

출근하는 현수,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미라에게 묻는다.

“청주로 몇 시에 출발할 거야?”

“아이들 유치원 마치고 갈 거니까, 대략 두 시쯤 출발하겠죠.”

“얘들이 만만찮을 텐데... “

“걱정하지 마세요. 나 없다고 술 먹고 늦게 오지나 말고.”

“시험이 다음 주인데 술 마실 수 있겠어?”


혜진이 안방에서 나와 현수에게 자랑하듯이 말한다.

“아빠, 오늘 우리 외갓집 간다~.”

“갈 때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응, 알았어.”


현수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외가로 가기 위해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미라와 아이들.

현관문이 열려 있고 혜진은 문밖에서 문고리를 잡고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현관에서는 장화를 한쪽씩을 들고 대치하고 있는 인주와 한주의 모습. 

어깨에 배낭을 멘 미라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외갓집에 가는 데 장화 신고 가면 안 돼. 외할아버지가 ‘이놈~’ 해.”

미라는 인주와 한주가 한 개씩 들고 있는 장화를 빼앗아 든다.

인주와 한주의 아쉬워하는 표정.

미라는 빼앗은 장화를 신발장에 넣고 바닥에 놓인 신발을 아이들 앞에 놓는다. 

“자, 이 신발 신어.”


밖에서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는 혜진이 재촉한다.

“엄마 빨리 가자~.”

미라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아이들의 신발을 직접 신겨준다.

미라는 불만이 가득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서며 현관문을 닫는다.



혜진은 인주의 손을 잡고 한주를 안은 미라 앞에서 걷는다.

“혜진아, 인주 손 꼭 잡고 걸어야 해.”

“응.”


이윽고 큰길로 다다른 미라와 아이들.

미라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아이들과 택시에 오른다.


택시에서 미라와 아이들이 내린 후 고속버스터미널 입구를 향해 나란히 걷는다.

미라는 한주를 안고 있고 그 옆의 혜진은 인주의 손을 잡고 있다.

“혜진아, 엄마 옆에서 인주 손 꼭 잡고 걸어야 해.”


미라는 혜진 쪽으로 연신 고개를 돌려서 보며 걷는다.



고속버스 안으로 혜진과 인주가 차례로 올라온다. 

그리고 한주를 안은 미라가 뒤따라 올라온다.

버스 좌석 번호를 확인한 미라는 인주와 혜진을 복도 오른쪽 의자에 나란히 앉히고 그 맞은편 왼쪽에 한주와 나란히 앉는다.

처음 타는 고속버스가 신기한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고속버스에 태워서 안도하는 미라.


“엄마, 이 차 언제 가?”

“조금 있으면 갈 거야.”


고속버스에 오른 승객들은 혜진과 인주가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본다.

눈동자가 새까만 귀여운 녀석들.

반대편의 미라와 한주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승객은 미소를 짓는다.

이윽고 정원의 반도 못 채운 버스가 출발한다.

혜진이 차창을 쳐다보며 미라에게 말한다.

“엄마, 버스 간다.”

버스가 출발하자 아이들의 상기된 모습.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달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며 호기심에 들떴던 아이들의 표정이 무료한 표정으로 바뀐다.

“엄마 많이 가야 해?”

“응, 많이 가야 해.”


미라는 무료한 아이들을 위해 배낭 안에서 과자를 꺼내준다.

버스 안 승객 대부분은 눈을 감고 편안하게 잠자고 있다.


그렇게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터널로 진입하자 버스 안이 어두워진다.

버스 안이 갑자기 어두워지자 심심해하던 인주의 얼굴이 기쁨이 가득한  개구쟁이 얼굴로 돌변하며 현수 자동차 안에서 그랬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아---.”

무료해하던 혜진도 표정이 바뀌면서 덩달아 소리를 신나게 지른다.

“아---.”

아무것도 모르는 한주도 가세한다.

“아---.”


조용하고 평화롭던 버스 안이 아이들 목소리로 점령당한다.

졸거나 잠을 자던 승객들이 놀라서 깨어 고개를 들고 아이들 쪽을 바라본다.

당황한 미라, 우선 급한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혜진과 인주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다.

“안 돼, 안 돼!”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쪽에 앉은 한주가 계속 소리를 지른다.

“아유, 이걸 어째!”

미라는 돌아서서 한주의 입을 막는다. 그러자 혜진과 인주가 또 소리를 지른다.

다시 또 혜진과 인주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다.

혜진은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한다. 

“여기서 '아~'하면 안 돼, 조용히 해야 해! 경찰 아저씨 온다!”


아이들 입을 막은 미라는 버스 앞 창문을 바라본다.

달리는 버스의 앞창문으로 보이는 끝없이 이어진 터널 모습.

끝없이 이어진 터널을 바라보며 미라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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