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 공부를 해 본 적이 있는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방송이나 신문 속 천재, 수재들 이야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 멘트.
'이런 멘트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갈망 덕이었을까. 나는 나름 성적을 열심히 챙겼다.
그러나, 누군가 '단 한 번이라도 공부에 몰입해 본 적이 있는가'라 묻는다면... 주저 없이 '아니요'라 답할 거다 - 공부를 즐기고 싶다는 내적 동기보다, 남의 시선, 성적, 그리고 주변의 인정을 의식한 조급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대학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공부는 여전히 끝까지 미루고 싶은 숙제이자, 자존감을 흔들어놓는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
공부가 쉽지 않은 나,
진정으로 집중해 본 적 없는 나.
과연 정상일까?
능력주의, 성과주의, 학벌주의로 점철된 한국사회에서 공부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일본에 살던 내가 이를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은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한국 초등학교에 전학 온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중등, 고등 수학 선행을 이미 끝냈다는 우등생의 소문,
영어 토론과 수학 경시대회를 준비하며 학원을 오가는 친구들,
새벽까지 공부하는 일상이 너무나도 고단하다는 투정까지...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잠시 다닌 구몬 (학습지) 외에는, 학원에 발을 들인 적 없는 나에 비해, 또래 친구들은 매우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실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지라, 이런 현실은 청천벽력 같았다 -'학원'과 '선행'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 나는 이미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다행히, 어머니께선 타인의 시선과 비교에 민감한 내 기질을 알고 계셨던 터라, 학원에 보내는 대신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셨다. 그녀의 혜안 덕에, 나는 중, 고등학교 생활 내내 학원의 도움 없이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대학 입시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가 좋았을 뿐, 나는 진심으로 학업에 몰입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항상 공부하는 아이'로 보이기 위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우리 아이는, 학원의 도움 없이도 잘 해낼 수 있어'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집에서도 쉬지 않으려 했다.
공부를 놓지 않은 것은 결국 남들의 시선과 자신의 조급함 때문이었을 뿐,
정작 내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에 대한 목적과 동기는 희미하기만 했다.
그렇게 외인적 동기 (extrinsic motivation)에 기대어 살아왔던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공부는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어졌고,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우등생'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자, 학업을 지속해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공부를 잘할 수 없으니, 이제 도전하지 말아야지.'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각들이 내 일상을 지배했고, 결국 공부와는 담을 쌓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부를 놓아버린 순간부터 학업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들도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넘긴 학창 시절 후에는 '공부'라는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서 '공부'는 단지 학생들만의 과제가 아니니 말이다;
직장에서는 영어와 각종 자격증 시험을 꾸준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사회적 존중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교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더욱이, 사회에서 선망받는 '사(師)'자 직업 -즉, 전문직- 은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가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공부'에 얽매여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은 '공부'의 본질에 대해 고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나 역시, 이러한 환경의 희생양이었을까?
막연히 공부를 피해왔던 나에게, 이제 묻고 싶다;
'공부란 무엇일까?'
공부의 사전적인 정의는 '이론, 지식, 기능 등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즉, 학업에 국한되지 않고, 삶과 관심사 전반에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모두 공부이다.
배움의 인풋(input)과, 익힘의 아웃풋(output)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 - 그것이 바로 공부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학업은 공부의 대상 중 하나일 뿐, 공부 그 자체를 정의하진 못한다.
공부란, 내 삶을 이끌기 위해 '배움'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내 내적 동기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자, 스스로의 성장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그 자체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난 '성적'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느라 공부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던 것 아닐까. -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숫자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심리학의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성(autonomy), 유능성(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욕구가 모두 충족되었을 때 때 내재적 동기가 발현된다고 한다.
이를 내 삶에 대입해 보면, 내가 지금껏 공부해 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유능해지기 위해서였고, (competence)
두 번째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relatedness)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요소 하나가 빠져 있었다;
바로 '자율성(autonomy)'이다 - 나는 한 번도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어떤 분야에서 능력을 펼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 본 경험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제 나는 다음의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왜 공부하는가?'
'나는 어떤 능력을 쌓고 싶은가?'
과거의 나는 성적과 타인의 평가를, 나의 가치 척도로 삼았다. - 성적과 학벌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사회와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잘못된 기준에 얽매여 살던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길은, 어쩌면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