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정리하며
내 안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조용히 있지만,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운을 감지하면 걷잡을 수 없이 말썽을 부린다.
화가 나면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슬퍼서 울기 시작하면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으며,
무언가 못마땅하면 입을 툭 내밀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낀다.
그때마다 나는 서툰 부모가 된 것 마냥
아이를 달래려 애쓴다.
"왜 그래? 소리 지르면 안 되지."
"울지 마! 뚝!"
"왜 짜증을 내니? 참을 줄 알아야지."
하지만 아이의 투정은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더욱 거세졌다.
처음에는 소리만 지르던 아이가
이제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지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가벼운 눈물만 보이더니
이제는 바닥에 벌러덩 누워
온몸을 떨며 울어댄다.
짜증을 내지 말라고 타이르면,
삐져서 방구석에 웅크린 채
등을 돌려버린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 감정도 덩달아서 요동친다.
아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괘씸하기도 하며,
그 투정을 잠재우지 못하는 내가 못난 부모처럼 느껴져
스스로가 미워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마음속 아이와 화해하려면,
그리고 내 과거와 화해하려면,
"그러지 마"라고 엄하게 타이르는 것보다,
"괜찮아"라고 다독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아이의 울음, 투정, 분노를 억누르지 않고
"괜찮아"라는 말로 끌어안아 주었을 때,
내 마음부터 평온해졌다.
"아이가 왜 저럴까? 왜 내 말을 듣지 않을까?"라는 불만보다,
아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도 스스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방긋 웃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New Roads Behavioral Health
나는 몰랐다.
내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그 아이가 아프다고 신호를 보낼 때마다
나는 그 상처를 들여다보기보다
아이의 '행동'만을 억누르려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애써 중심을 잡고 있던 내 마음도 불안정하게 흔들렸고,
결국 아이의 상처도, 나의 상처도 아물지 못한 채 함께 깊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나부터 달라지려 한다.
아이가 어떤 말썽을 부리더라도
억지로 억누르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 행동의 근원이 된 상처를 이해하고
그 감정을 저항 없이 끌어안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지금의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야,
나의 과거도 울음을 그치고 환한 미소로 나를 응원해 주지 않을까.
번외)
요즘 나는 '수용-전념 치료(Acceptance Commitment Therapy, ACT)'를 내 삶에 도입하려 한다.
ACT는 내면의 고통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르는 치료법이다. 자신의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며,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을 향해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이제 감정, 과거과 투쟁하는 대신, 그것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그 아이를 보듬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왜 그래' 보다는 '괜찮아'라는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는,
따뜻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어른이'들에게 응원을 건네며,
한강 작가님의 '괜찮아'라는 시를 올려본다. (이 글의 영감을 준 작품이다^^)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출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_ 한강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