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나를 글로 남기는 것
기록하지 않으면, 증발해 버린다.
- 이건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예외는 없다.
찰나의 순간을 붙잡지 않으면,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남겨두지 않으면,
그 귀중한 파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아직 글솜씨가 서툴러,
두서없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낯이 뜨거워지지만,
웬만하면 노트와 펜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ADHD로 진단된 내 머릿속에서는
생각의 주제가 1분마다 열 번은 바뀐다.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도,
생각이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튀어 다닌다.
- 그렇게, 내 삶도 꼭 내 머릿속처럼 엉망이 되곤 했다.
게다가, 나는 감정의 기복 자체는 크지 않더라도,
감정이 작은 흔들림이
곧 커다란 지진으로 번지는 일이 잦았다.
감정을 조절하려면,
생각의 가닥을 붙잡고 차분해지는 과정이 필요한데,
수십 갈래로 갈라지는 사고 속에서 '차분함'을 찾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물론, ADHD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이를 '질환'으로 규정할지에 대한 논란도 많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ADHD는 주의력 문제뿐만 아니라 감정 기복, 불안, 우울과도 얽혀 있다. 나 자신만 보아도 그런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글을 쓰면 생각의 흐름이 잡힌다는 것을.
산만하게 흩어진 조각들이 스스로 질서를 찾고,
혼란스럽던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는다는 것을.
펜을 잡고 머릿속을 종이 위에 그대로 쏟아내는 것...
이것을 ‘브레인 덤핑(Brain Dumping)’이라 부른다;
감정이 격해질 때 글을 쓰면, 내면에 갇혀있던 응어리가 외부로 분출되면서 차분해진다.
- 마치 화산 속에서만 끓어오르던 마그마가, 용암처럼 흘러나와 서서히 식어가듯이.
처음엔 형체 없던 생각들이
‘언어’라는 실체로 굳어지는 순간,
모호했던 것들은 점차 선명해지고,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남기는 글이 내 감정의 자취가 되고
미래의 나를 위한 기억의 단서가 되면서,
나를 압도하던 일상의 혼란이 정돈된다.
올해 들어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현재의 단면을 미래의 나 자신이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을 남기려 한다.
지금의 감정 패턴과 사고 습관은 과거의 나에 의해 빚어진 것이고,
이를 다듬어 나가는 것은 현재의 나이다.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면,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떤 요소들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도 명확해진다.
그렇기에, 일기는 미래의 나를 위해 남기는 유산이자,
스스로의 과거를 효과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며,
‘현재’를 가장 소중히 하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다.
이전까지는 내 집중력 부족과 의지의 나약함을 탓하며 정체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글'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찾았다;
산만한 머릿속,
흩어진 감정,
혼란스러운 하루,
흘러가 버릴 뻔한 조각들
- 이들을 모든 것들을 붙잡아서 기록하는 순간,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는 이 연재를 통해,
지금의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마음의 기반을 다지고,
그 위에서 더욱더 굳건한 현재를 쌓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