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다(Ronda)는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고도(高都)의 소도시로 723m 협곡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작은 도시이다. 까마득히 높은 바위들과 간담이 서늘해지는 협곡위에 세워져있는 누에보 다리와 건축물들이 만들어내는 광경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안달루시아 지방]이 다 그러하듯 론다 역시 게르만족, 서고트족이 모여 살다가 8세기경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았기에 이슬람문화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또한 론다는 세비야와 함께 투우(鬪牛)의 고장으로 1785년에 만들어진 론다 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다.
장관을 이루는 누에보 다리의 멋진 풍광 때문에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쓸 당시 이곳에 머물며 작품 속 암반절벽과 높은 다리를 묘사했다. [누에보]는 소설의 영화촬영 배경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스페인 내전(內戰)에 참전했던 헤밍웨이는 자신의 체험을 계기로 1940년 이 소설을 썼는데, 적군의 교량을 폭파하는 작전을 수행하던 ‘로버트 조던’이 사랑을 느끼게 된 ‘마리아’와 함께 교량을 폭파한다. 이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조던은 마리아를 떠나보내며 자신은 죽음에 이른다는 것 내용이다.
❏ 론다의 상징 누에보(Nuevo) 다리
헤밍웨이 소설 속의 누에보 다리는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엘 타호(El Tajo)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과다레빈(Guadalevín)강을 따라 형성된 120m 높이의 협곡을 가로지르고 있는 기암절벽의 아치형 다리(98m)는 1751년부터 시작해 무려 42년이 지나 완공했다고 한다.
다리 중앙의 아치모양 위에 있는 방은 1936년 스페인 내전기간 중 감옥과 고문장소로도 사용됐는데, 포로 중에는 골짜기로 내던져져 사형시킨 잔혹한 곳이었다 한다. 자연 침식에 의해 생겨난 위태로운 협곡과 험준한 계곡바위들은 마치 겹겹이 쌓인 세월의 기나긴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원전 로마시대를 거쳐 무어인 이슬람시대에도 이곳 [론다]가 군사도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는 협곡위의 마을은 밖에서 보는 가파른 협곡의 아찔함과 달리 단단한 돌산위에 평화롭게 정착한 작은 도시였다. 에스파냐(Espana) 광장으로 나오니 외국인 부부가 벤치에 앉아 간식을 들고 있다.
벤치로 다가가 빈구석에 합석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하니 마담이 갑자기 어깨를 확 끌어안으며 찍으라하기에 순간 당황했던 사진 하나를 남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누에보 시가지는 절벽 그자체가 도시의 멋진 경관을 이루며 오금저리는 여행객들을 사로잡는 중에 색다른 스페인으로 다가온다.
❏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
스페인 론다를 방문했을 때 [누에보 다리]와 함께 역사적인 건축물을 찾는다면 [투우장]이 있다. 론다 중심부에 유독 눈에 띄는 하얀 원형건물이 있는데 6,000명을 수용한다는 투우장이다. 1785년 개장한 론다 투우장은 2백년을 훌쩍 넘긴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다.
또한 붉은 천을 흔들며 투우를 하는 근대 스페인 투우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갈색 문 위에 쓰여 진 푸에르타(PUERTA; 門)를 보며 투우경기가 있는 날, 이 문이 활짝 열리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인근에 투우사 동상과 성난 투우의 동상이 시선을 끈다.
투우의 시작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스페인 군주 카를로스 5세가 창으로 황소를 죽여 아들의 탄생을 축하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투우는 투우사가 긴 검으로 소의 급소를 찌르거니, 말을 탄 투우사가 긴 작살을 사용해 소를 죽이는 것이다.
플라멩코와 투우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화의 상징이다. 하늘에 소를 바치며 한해 풍년을 기원하는 스페인사람들의 축제인 투우는 5월부터 10월까지 일요일에만 개장한다. 하지만 동물학대라는 반대시위에 정부지원까지 줄면서 이곳 투우장은 1년에 3회만 개최하기에 입장료가 상상외로 비싸다고 한다.
투우장 인근공원에 있는 헤밍웨이 조각상은 그가 작가로서 경험했던 투우사적 격렬한 삶을 대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20대 후반 스페인에 머무른 동안 1천회의 투우관람을 했다고 한다. 투우를 통해 평소 그가 추구했던 남성본연의 격렬하고 진취적인 마초(Macho)로서의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었을까?
1933년 케냐로 사파리여행을 떠나 10주간 머물던 헤밍웨이는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하고 1952년 50세 중반에는 쿠바에 머물며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다. 62세 엽총을 입에 문채 자살한 그는 격렬한 죽음을 통해 가장 원초적인 격정의 순간을 삶의 지향점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의 삶은 평생 유랑(流浪)하는 거칠고 불안한 삶이었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투우사의 핏빛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남달리 자극적인 상황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전쟁터]든 [투우장]이든 [사냥터]든 [거친 바다]이든 저돌적으로 뛰어들었던 헤밍웨이 전력(全歷)이 상남자 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어 그라나다로 향하는 지평선은 온통이 올리브나무 밭이다. 2시간을 달려 안달루시아 지방의 꽃이라는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플라멩코 소극장]에서 7시 공연을 관람했다. 플라멩코는 15세기말 인도 집시들이 안달루시아 지역에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춤이다.
플라멩코 소극장
그라나다 야간투어
인도인들이 정착한 거리나 동굴을 주거로 한 집시들의 사랑과 열정, 슬픔이 어우러져 [플라멩코]라는 춤과 음악으로 탄생됐는데, 그 애환을 표현한 희로애락이 살풀이춤과 유사해 보인다. 18세기 안달루시아 사람들이 마드리드로 이주하면서 거리공연으로 시작되었고 19세기부터 마드리드 문화로 정착되었다 한다.
Tablao Flamenco Albayzin 소극장
❏ 그라나다 플라멩코(Flamenco)
[플라멩코]하면 기타선율과 주름장식의 티어(tiered) 스커트를 입고 머리에 빨간 꽃을 꽂은 여인이 무대를 빙글 도는 춤사위가 연상된다. 타블라오 플라멩코 알바이진(Tablao Flamenco Albayzin) 극장에서의 [플라멩코]는 식당식보다 무대가 크기 때문에 댄서들의 몸동작이 더욱 열정적으로 느껴진다.
[플라멩코 공연]은 1시간 관람하며 맥주나 포도주, 음료수 1잔이 티켓에 포함돼 있는데, 그라나다 가격은 30€로 세비아보다 10€ 더 비싸다. 영혼을 불태우는 공연은 무대가 작을수록 무용수의 거친 숨소리를 느껴볼 수 있다.
기타선율이 흐르면 탭 댄스처럼 따다닥, 따다다닥 구두소리가 먼저 들린다. 보랏빛 무대조명과 함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 무용수가 등장하며 격렬한 춤사위가 시작되니 순식간 공연장은 박수소리의 무대가 된다. 이어 등장한 무용수는 눈빛이 관객들을 꿰뚫어 보는 듯 강렬했다.
격렬한 음악에 맞춰 구두소리 역시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춤사위에서 강렬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내젓는 팔다리와 회전할 때 휘감기는 옷자락의 물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귀청을 뚫을 듯한 구두밑창 소리는 마치 공연장 바닥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남자무용수도 절도 있는 동작과 열정적인 표정으로 열렬한 박수를 끌어낸다. 빛과 소리, 춤과 의상이 혼연일체가 된 공연은 관람 전 생각했던 것보다 멋졌다. 다만 플라멩코 공연은 현란한 몸동작으로 무대바닥 먼지가 많을 것 같아 준비한 마스크를 쓰고 관람했다.
❏ 그라나다 야간투어
플라멩코 공연을 마치고 [알람브라 궁전] 야경을 보기위해 길을 나선다. 그라나다에는 성 니콜라스 전망대가 있는데 알바이신 언덕길을 오르면 담벼락 늘어진 꽃 넝쿨이 예쁜 집들이 영화 속 마을처럼 골목길을 채우고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어둠속에 황홀한 알람브라 궁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알바이신 언덕길
알람브라 궁전 야경
전망대 뒤로는 성 니콜라스(San Nicolás) 교회가 있다. 멋진 궁전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뒤로하고 내려오다 보니 한 골목길 모퉁이 지붕위로 하얀 달님이 얼굴을 내밀며 알람브라 궁전을 비추고 있다.
자유여행을 할 경우 밤길 위험을 줄이고 그라나다 야경을 볼 수 있는 투어상품도 있다.
이어 타파스(tapas) 투어를 위해 선술집 계단을 오르는데 젊은 종업원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순간 놀랐지만 ‘예뻐요’라고 응수하니 스페인 아가씨의 입이 귀에 걸린다. 간식으로 먹는다는 [타파스]로 오징어튀김과 가지튀김에 상그리아(Sangria)를 곁들여 여행에 지친 노독(路毒)을 풀며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