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모파상 <여자의 일생, 단편선>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 짧은 인생을 살고 갔다. 신경질환을 앓고, 정신병원에 있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문득, '니체'의 생의 마감도 정신병원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소설 <이방인>을 읽으면서 받았던 삶 속에 내재한, 아니, 삶 속에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그러나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관찰하던 '알베르 카뮈'의 시선에 대한 감동을 갖고 있었다. 그런 '카뮈'에 관한 글을 읽다가, 우연히 '모파상'의 글들을 읽었었다던 문구가 머릿 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었고, 그렇게 작가 '모파상'의 작품에 대한 독서의지는 나의 내면 어딘가에 간직되고 있었다. 마침, 최근 <안나 카레니나>에 이어, '셸리 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Go as a river)>을 읽고, 이 추세를 이어, 여자의 삶에 관한 독서를 이어가 보자는 마음에 <여자의 일생 외 단편선>을 통하여 드디어 '기 드 모파상'을 만났다. '기 드 모파상'에 대해 잠시 검색해 보니, 프랑스의 사실주의 혹은 자연주의를 대표한다 등등.... '~주의'라는 수식어구가 달려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창작의 고뇌하는 순간의 작가를 '~주의'라는 틀에 우겨넣는 우리들의 모습에 약간의 저항감이 생기며, 얼른 페이지를 닫는다. 적어도 나는 '~사상', '~주의'를 생각해가며 작품을 보고 있지는 않으리... 누구에게는 '사과'가 맛있지만, 누구에게는 '복숭아'가 맛있는 법이니...
먼저, <여자의 일생>외에 책 속에 포함된 '모파상'을 볼 수 있는 그의 단편의 제목을 일일이 나열해 놓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읽은 그의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아니겠는가? <목걸이>, <비계덩어리>, <두 친구>, <승마>, <미친 여자>, <미뉴에트>, <의자 고치는 여인>, <달빛>, <보석>, <미스 하리에트>, <목가>, <노끈>, <후회>, <쥘르 삼촌>, <야성의 어머니>, <아버지>, <걸인>, <후원자>, <첫 눈>, <고아>, <어느 여인의 고백>, <여행중에>... 이 작품들 속에서, '모파상'은 그가 보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가식, 편견의 모습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에 참전을 통해 그가 느꼈던 휴식기의 적군 병사와 일반인들간의 관계가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다. <여자의 일생>에서는 자연이나 장면을 묘사하는 그의 그림을 그려내는 듯한 글솜씨에 감탄을 연발하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연을 묘사했던 감명을 다시 느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여인의 감정을 묘사하는 남성작가의 섬세함은 마치 '톨스토이'가 그려 넣은 <안나 카레니나>의 장면을 보는 듯하다. 가벼운 '눈송이'를 '솜의 비'로 적어놓은 작가의 언어마술을 실컷 음미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모파상'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나'의 의도나 생각은 '이것'이었는데, 상황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그 해석이 변질되는 예들로 나를 때리기도 했고, 그의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비계덩어리>에서 매춘부를 대하는 귀족들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노끈>에서는 주인공을 보는 모든 이들의 편협한 시각, <의자 고치는 여인>을 보는 약사의 자기 중심적 모습 등 그의 작품속에 나타난 인간의 이중성 내지 부조리를 끄집어 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각이 바로 '알베르 카뮈'에게 전달되어, 비로소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인식의 꽃을 피우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단편선을 읽어 가면서, 마지막에는 뒤통수를 얻어 맞으며 느끼는 온 몸을 깨는 반전의 맛도 느꼈고, 때로는 이건 왜 이렇게 결말을 맺었지? 하며 어안이 벙벙한 나의 모습도 보았고, 어떤 것은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아! 이것이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구나!'하는 먹먹함도 갖게 해 준 시간이었다.
<여자의 일생>에서는 19세기 프랑스 귀족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 즉, 정절을 지켜야 하는 소녀, 그녀가 맺게되는 결혼, 남편의 외도, 결국 의지할 건 자식뿐, 그 자식에 대한 의지가 방탕아의 아들을 만들고, 나중엔 모든 재산을 잃게 되고, 손녀를 맡게되는 여인의 일대기...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지요."하며 끝을 맺는 작품이다. 뭔가 스릴있는 아니면 특이한 내용은 아니지만, 문자로써 자연의 그림을 그리고, 등장인물에게 생명을 주고, 감정의 살아있음을 전달받는 또 한번의 귀중한 시간이었다.
끝으로, 책 속에 형광색으로 남겨놓은 다시 보고싶은 문장들을 아래에 남겨놓으며 글을 마친다.
<여자의 일생> 중....
그 선량함은 마치 태양이 늪의 물을 말리듯이 그들 수중의 돈을 마르게 하였다.
바다에 거품으로 술 달린 가장자리를 만들고 있는 잔물결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조약돌 위로 굴러왔다.
대양은 목소리와 생각을 마비시켜 그들을 침묵하게 했으나, 식탁은 그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늘 아래에서 빛나는 유동체인 자기의 복부를 활처럼 구부린 바다는 음흉한 약혼자처럼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불의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은 그들의 포옹에 대한 욕망으로 붉게 물들 듯이 일몰을 서두르고 있었다. 태양이 바다와 합쳤다. 그리고 조금씩 바다는 태양을 삼켜버렸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살과 피와 뼈가 살갗 속에서 녹아 섞여버린 듯이 온몸에 커다란 공허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생각은 나란히 걸어가기도 하고 가끔 서로 얽히기도 하지만 결코 섞이지는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 각자의 정신적 존재는 삶에 있어서는 영원히 혼자인 채로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지요."
그 외 <단편선> 중...
사회적 지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돈으로 인해서 형제와 같은 감정을 느꼈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금화소리를 내는자들, 가진 자들의 위대한 동지 의식을 느꼈다.
길 양쪽에는 벌거벗은 밭들이 펼쳐져 있었고, 서투르게 면도한 수염처럼 땅을 덮고 있는, 낫으로 벤 소맥과 귀리의 짧은 밑동으로 해서 노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안개 낀 대지는 연기를 내뿜는 것 같았다.
부자집에서는 삶을 즐기는 사람은 "바보 같은 짓"을 하지. 그런 사람을 웃으면서 방탕아라고 부르거든. 가난한 집안에서는 부모의 재산에 구멍을 내는 소년은 악동이 되고, 부랑배가 되고, 건달이 되는 것이라네.
한 품의 가치도 없다고 말들 하던 쥘르 삼촌은 갑자기 정직한 사람, 마음이 너그러운 청년, 공명정대한 사람이 된 것일세.
공기가 육체의 생명이듯이, 사랑은 내게 영혼의 생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