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시간, 시작하는 시간
누가 금을 그었을까? 이제 끝이라고, 또 시작이라고 과학적 수치 해석은 필요 없다. 그저 해가 지고 다시 뜨는 일상을 한 매듭 한 매듭 쌓거나 지우거나 그렇게 선 긋기가 필요해서 비슷한 기온과 풍경이 다가오면 우린 그때를 기억한다. 아무도 왜라고 묻지 않지만 나무가 나이테를 늘려가며 덩치를 키우듯 사람도 그렇게 같은 시기를 몇 번 겪었는지를 표시한다. 어떤 때가 되면 뭘 배워야 하는지,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그 굴레에 대한 의무감에 무언가 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실증을 하려고 애쓰며 사는 듯하다. 또 한 해가 저문다는 말을 벌써 몇 번째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차가운 겨울날의 한복판 어느 날 날이 저물면 그해가 다 갔다고, 새벽 뜨는 해를 찬 입김 뿜어대며 새로운 기대를 쏟아내며 맞기 일쑤다. 제발 아픈 일일수록 잊지 말자. 똑같은 잘못을 부디 반복하지 않도록. 보내고 나쁜 기억을 지우고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왜 자꾸 그 아픔을 반복하는지 이제는 물어야 할 것이다. 시작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으로 충분히 족하다. 메모리의 어원이 된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자.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지워지지 않을 오늘을 살자. 어젯밤은 영하 9도까지 내려가 말초신경 하나까지 움츠러들게 하더니 오늘은 한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올랐다. 하루 사이의 기온 차가 20도 가까이 되는 환경도 우리는 거뜬히 견디고 산다.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가 지켜온 가치들이 훼손되더라도 다시 세울 힘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렇게 밤을 견디고 또 보내고 아침을 살자. 새해가 되거든 여전히 네가 그 자리에 있다고 말해주길 또 내가 잊지 않고 그 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을 꼭 말해주길 바라며 오늘 또 지새울 밤을 견뎌 본다.
2024년을 하루 남긴 거친 밤에 –Si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