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새롭게 해 보면 얻게 되는 게 있다..
안녕 YS ,
더 늦기 전에 노래를 배워보는 건 어때? 뜬금없이 웬 농담이냐고 하겠지만 난 꽤 진심이야. 만약 금전적인 여유까지 있다면, 1:1 보컬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걸 추천해. 당시 경제 규모를 생각했을 때 제법 사치스러운 비용 중 하나였지만, 내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투자 비용이라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경험이었어.
아.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지만, 난 노래 부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 더 정확히 말하면 노래를 부른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나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것은 정말 좋아하지만, 노래를 부른다는 생각은 잘 안 하는 것 같아. 나에게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는 접대나 회식에서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그 공백을 대신할 수 있는 옵션 중 하나로, 매우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행위 중 하나야.
그렇게도 부담스럽게 여겼던 행위를 왜 굳이 돈 들여 배울 결심을 했을까?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는 큰 결심을 한 이상 무엇이 무서울까, 무작정 해야겠다는 무모함이 있었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월급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건 저질러 보자.’ 하는 쓸데없는 조급함으로 결심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노래 학원도 등록하게 되지 않았을까 해.
첫 레슨 시간, 보컬선생님과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해.
“노래를 배우는 목표가 뭔지 알려주실래요? 회원님께 맞추어 레슨 내용을 구성하려고 해요. "
"..."
"예를 들어 축가를 부른다거나, 회사에서 회식 때 부른다거나. 무슨 목표가 있으세요? “
"아... 전 목표가 없습니다. 그냥 배우면 돼요.”
“그렇다면..., 음... 어떤 방식이 좋으실까요? 노래 한곡을 가볍게 배우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기초부터 연습하며 노래를 배워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면 기초부터 배워 볼게요.”
이건 뭐든지 기초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학습 패턴에 따른 반사적인 답변이었어.
“기초부터 한다는 건, 호흡이나 발성의 기본부터 알려드리며 연습하는 것이라 좀 지겨울 수 있어요.”
“괜찮아요. 언제 또 배워보겠어요. 저 발성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완벽한 거짓말이야. 근데 순간 선생님의 좋아하는 얼굴이 보였던 것 같아. 그래서 솔직히 덧붙이진 못했어.
'한 달만 하고 그만둘 건데, 핵심 비법만 가르쳐 주세요.'
내가 얼마나 첫날의 나를 칭찬하고 싶은지 몰라. 선생님은 기본부터 차근차근 충실히 가르쳐 주었어. 호흡법, 연습하는 방법, 성대가 소리 내는 원리, 발성법 등등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는 것이 꽤 즐거웠어.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길을 어설프게나마 스쳐본다는 만족감이 제일 크지 않았을까.
4개월 동안 열정적이고, 인내심 많으신 선생님 덕분에 내 노래 실력이 좀 나아지긴 했다고 생각해.
그런데, YS. 내가 노래학원을 다녔었다는 건 비밀로 해주었음 해.
선생님이 노래를 잘 부르는 법을 알려주고, 심지어 잘하게도 만들어주고, 무한정의 칭찬으로 자신감도 북돋워 주지만, 나의 부끄럼을 잘 타는 성향을 바꿔주진 못하더라고.
역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건 나 자신이야.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에 대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TV에서 보았던 족집게 같은 원포인트 레슨으로 엄청난 재능이 있는 누군가가 마법처럼 노래를 잘하게 되는 그런 장면들만 생각했던 것 같아.
YS. 어설프지만 잘난 척을 좀 해볼게.
노래를 부를 때 제일 먼저 체크해야 하는 게 뭔지 알아? 바로 숨자리야.
"가수들의 라이브 영상 보면서 어디서 숨 쉬는지만 체크해서 따라 해도 기본은 부를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이 처음 노래 부르는 법을 알려주면서 알려준 비법이었어. 당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같이 숨자리를 체크해 보았지. 들리는 소리가 아닌 ‘들리지 않는 소리’에 집중해서 노래를 들었던 것 처음이었어.
노래를 잘 들려주기 위해선 이 들리지 않는 영역을 엄청나게 연마해야 해.
어디서 쉼 쉬어야 하는지 바르게 찾아 숨을 쉬어주어야 하고, 그 숨자리에 얼마나 어떻게 숨을 쉴 것인지 길이, 양, 속도 등의 적절함을 찾아 나만의 스킬로 만들어야 해.
이걸 잘하려면, 무조건 연습밖에는 답이 없어.
더 잘 들려주기 위해 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연마하는 그들의 노력은 얼마나 엄청난 것일까?
(덧붙여, 이전에도 알았지만 김동률은 정말 최고야.)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기본 이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엄청난 노력과 함께 세밀한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고도의 노동 집약적 행위라고 생각해. 한음을 노래로 만들기 위해 내뱉는 발음, 정확한 음정, 호흡의 양,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기법 등 고려해야 하는 것이 엄청나더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원조 가수의 영상을 보고 내가 직접 불러보니 이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쉽게 부른다는 건 없어. 그렇게 들리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것이지.
여태까지 나는 그저 듣고 싶은 노래를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했는데, 이제는 부르는 사람들의 노력이 들리기 시작했어. 난 이제 노래 부르는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무조건 박수를 칠 거야.
선생님은 무심코 한 이야기인데,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던 가르침이야. 그대로 옮길게.
"절대 내 귀에 의지하면 안돼요, 내가 듣는 소리와 타인이 듣는 소리는 매우 달라요. 항상 주의해야 해요, 내가 듣는 소리가 진짜 소리가 아니에요."
"노래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내는 소리를 많이 듣는 연습을 해야 해요. 나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알고 있어야 해요"
YS. 뭐든지 새롭게 해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
노래 배우는 것이 아니어도 좋아. 평소에 네가 결코 해보지 않았을 것들을 지금쯤 한 번이라도 도전해 보길 바라.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서 얻는 나만의 깨달음들이 20,30대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풍성해. 너무 고민하지 말로 그냥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