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아져요
이사를 앞두고 조명을 새로 장만하기로 했다.
식탁 위를 따뜻하게 비춰줄 조명과 거실을 편안하게 밝혀줄 등을 고르기 위해,
그동안 멀리만 바라보던 조명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늘 지나치기만 했다. 유난히 밝은 불빛들이 괜히 눈을 피하게 만들었고,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시력이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눈앞이 한껏 환해졌다.
빛들이 나를 향해 인사하듯 쏟아졌다. 기분이 이상하게 좋아졌다.
어디선가, 새로 시작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격려 같은 빛이 느껴졌다.
가게 안에는 크고 작은 조명들이 저마다의 온도를 품고 있었다.
누군가는 하얀빛 아래서 일을 하고, 또 누군가는 노란빛 아래서 식사를 하겠지.
빛의 색만큼이나 사람들의 하루도 제각각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오래 붙잡은 건, 따뜻한 색의 펜던트 조명이었다.
그 빛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주변을 조용히 감싸 안는 힘이 있었다.
마치 ‘괜찮아요, 이제 조금 쉬어도 돼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이사를 준비하며 정신없이 지내던 요즘,
그 조명 아래 서 있으니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새 집의 인테리어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불빛을 다시 켜는 일 같았다.
며칠 뒤, 이삿짐이 모두 들어온 저녁이었다.
낯선 공간에 가구를 놓고, 박스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던 하루가 겨우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조명 설치를 하고 켜는 일이 남았다.
조심스레 스위치를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빛이 천천히 방 안으로 번졌다.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하얗게 비워져 있던 공간이 생기를 얻고, 낯설던 벽과 천장이 한순간에 ‘집’이 되었다.
빛이 벽을 타고 흐르며, 긴 하루의 피로까지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이었다.
새로 산 조명인데도 오래 함께해 온 것처럼 익숙했다.
그날의 첫 불빛이, 이 새집에서의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있었다.
조명이 켜진 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빛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좋았다. 낯선 공간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늘 ‘빛’이 강해야 좋다고 생각했다. 밝을수록 더 잘 보이고, 화려할수록 더 근사해 보인다고.
하지만 새집의 조명 아래서 깨달았다. 진짜 위로는 눈부심이 아니라, 그저 곁을 지켜주는 따뜻한 온도에서 온다는 것을.
불빛 하나로 공간이 달라지고, 빛의 방향 하나로 하루의 기분이 바뀐다면 우리의 삶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작은 친절 하나가 어두운 마음 한켠을 환히 밝혀줄 수 있으니까.
오늘 밤, 불을 끄기 전 마지막으로 방 안을 한 번 둘러본다.곳곳에 깃든 조명들의 온기가 나를 향해 미소 짓는 듯하다. 그 따뜻한 빛 덕분에, 새로운 하루가 조금은 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