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을 가게 됩니다. 흰머리기 새치 염색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예전엔 3개월에 한 번씩 하던 새치 염색을 이제는 1개월에 한 번 하는데도 왜 이리 흰머리는 빨리 자라는지 속도를 이길 수가 없네요. 키가 작아서인지 특히 저의 가르마에 나는 새치 흰머리는 가족 1호의 시야에 가장 먼저 걸리는 지적대상이 됩니다.
가족 1호는 저보다 키가 많이 커서 저의 정수리가 아주 잘 보이나 봅니다. 저는 그냥 남편의 흰머리가 자연스러워 보여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데 가족 1호는 저의 흰머리가 아주 싫은 듯합니다.
" 아니 나이 들어가면서 흰머리 새치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니야?"
"나이 들어간다는 게 아직은 속상하고 별로야, 얼른 가서 염색하고 와."
남편은 본인이 나이 들어가는 게 싫은지 마누라가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싫은지 확실한 구분을 하지 않지만 일단 흰머리가 싫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저는 이번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임명된 강경화 전 외무부 장관의 흰머리가 너무 멋져서 60대가 되면 염색하지 않고 흰머리로 자연스럽게 두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족 1호는 저의 이런 소박한 희망사항을 단칼에 잘라 주었습니다.
" 그분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멋져서 흰머리도 어울리지만 넌 안 어울려."
마누라가 안 예쁘다고 흰머리도 안 어울릴 것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이 남편 정말 그냥 두어도 되는 걸까요? 그냥 아직은 60이 안되었으니 염색해. 60 지나면 그때 생각해 봐 라는 좋은 말로 새치염색을 권했다면 이렇게 까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눈치도 센쑤도 없는 가족 1호는 말 한마디로 제게 천냥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유일하게 본인만 모르는 빚입니다. 같은 미용실을 다니는 터라 원장님도 우리 부부의 이런 사소한 얘기들을 모두 알고 계신데요. 젊은 미용실 원장님은 " 사장님이 이렇게 신경 써주시는 게 얼마나 좋아 보이시는데요"라는 말로 저를 위로해 줍니다.
마누라가 흰머리가 많이 나서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싫은 게 우리 나이대의 사랑 표현이라는 원장님의 포장된 서비스 말씀인걸 알지만 그래도 살짝 위로받고 왔습니다.
흰머리 새치 염색이 귀찮고, 나이 들어가는 게 싫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한 듯합니다. 서로의 흰머리 새치가 안쓰러워 보이더라도 예쁜 말로 위로하는 표현을 찾아봐야겠습니다. 남편이 제게 진 천냥빚도 조만간 청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