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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야 Oct 25. 2024

까까머리 아줌마

머리카락에게 주문을 외우다

나는 항상 긴 머리에 펌을 하고 다녔다. 출근 때마다 웨이브진 머리를 공들여 손질하곤 했다.가끔 이마가 보이게 올림머리를 하면 예쁘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나에게 머리카락은 소중한 신체의 일부였다.그런데 작년 5월에 유방암 2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수술만 하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상담선생님께서 수술 후 치료과정을 설명해주셨는 데 항암 여덟 번과 방사선치료도 해야 한다고 하셨다. 항암하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암이라고 진단받았을 때보다 더 큰 좌절감을 느꼈다.


 초등학생인 두 딸에게는 가슴에 혹이 있어서 간단히 떼어내는 치료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치료과정에서 머리가 빠지면 숨길 수 없을 텐데......

일단은 끝까지 숨기기로 했다.


항암 1차가 끝나자 한가닥, 두 가닥씩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머리카락이 많아졌다. 점점 탈모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내 손 안에 가득 담긴 머리카락을 보곤 얼음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에게  말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당황스러워서 울고 싶은 데 나는 엄마니깐 아이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참기로 했다.

 가족들과 머리카락이 사라지기 전에 스티커사진을 찍기로 했다. 찍을 때마다 어깨위로 내려앉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느라 사진 속 내 얼굴은 긴장 가득하게 나왔다. 잠시 후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모른 채 아이들은 스티커사진을 보면서 좋아했다. 웃음 후 눈물을 안겨줘야 할 엄마이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먹으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유방암이라서  수술과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해서 머리가 빠지게 될 거야."

순간 막내 딸의 눈이 빨개지더니 울음이 터졌고, 큰 딸은 담담한 얼굴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애써 침착해 하는 큰 아이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팠다. 그래도 말하고 나니 큰 숙제를 하고 난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내가 받아들여야 할 차례였다.

                    

 드디어 머리카락을 밀기로 했다. 50대 아줌마가 군대도 안갔는데 ‘까까머리'가 되었다. 혼자 가면 슬퍼할까봐 큰 언니,둘째 언니가 함께 가주었다.이발기로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니 내 마음까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문어머리처럼 반들 반들거렸다. 나름 귀여웠다.언니들도 내 머리통을 보며 한 마디씩 했다. 비구니 스님 같다고 머리통이 작고 예쁘다고 말했다.미용실원장님도 한마디 거드시며 까까머리는 공짜라고 하셨다. 난 슬펐지만 그 말들이 위로가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이제 까까머리 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언제쯤 내 머리카락은 길어질까? 머리만 아니면 아픈 걸 숨길 수 있었는 데.‘

모자를 쓰면 사람들이 모를 줄 알았지만 바로 알아차리곤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게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길고 길었던 항암이 끝났다.겨울을 견뎌 낸 머라카락은 봄을 맞이한 새싹처럼 자라기 시작했다.머리에 모발영양크림까지 바르며 정성스럽게 주문을 외웠다.

'머리카락아! 어서어서 자라나라.‘

잔디도 물을 많이 먹으면 잘 자라니깐 나 역시 다른 때보다 물도 많이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신랑 수염처럼 짧게 돋아난 느껴졌을 때  드디어 주문이 이루어졌구나 하고 기분 좋게 웃음이 났다.거울에 비친 내 머리카락은 2센티미터 정도 자란 듯 보였다.하지만 내 눈에는 잘라야 할 정도로 길어보였다.


 일 년여 만에 미용실을 가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암보다 무서웠던 까까머리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이제는 모자도 훌훌 벗고 다닌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줌마가 되었다.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머리카락아! 어서어서 자라서 단발머리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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