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진수성찬이었다.
우리 어머님은 요리솜씨가 좋으셨다.
그리고 손도 매우 빠르셨다.
마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티팟부인 같으셨다.
드디어 시할머니가 나오셨다.
"아이고, 에미가 참 애썼네. 왜 이렇게 많이 차렸어. 고생이 많았네."
"형수님, 감사해요, 맛있겠다. 저 어제부터 굶었잖아요."
반포 작은아버님은 어머님 시집오고 나서도 한동안 장가갈 때까지
한집에서 동생처럼 지내셨다고 하더니 아버님 어머님을 부모님처럼 따랐다.
"저 혼자 한 거 아니에요. 동서들도 집에서도 많이 해오고, 여기서도 같이 했어요."
그러면서
"새아기는 사과만 잘 깎으면 돼. 다른 거는 할 거 없다. 여기 사람이 몇이냐.
음식 하라고 시집오는 것도 아닌데. 우리도 그냥 모여서 한 끼만 딱 해 먹는 거야. 부담 갖지 마."
라며 웃으신다.
오히려 그 말씀에 뭐라도 배워서 나만의 요리로 깜짝 놀라게 해 드려야지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시할머니가 수저를 드시며 말씀하신다.
"그저 잘 살면 돼. 스트레스받지 말고. 너무 무리하면 탈이 나더라. 건강도, 마음도."
"요즘은 다들 건강식 찾고, 몸에 좋은 것만 먹는다고 저염식 찾고, 흰 빵도 안 먹는다며?"
"네, 어머님. 통밀식빵이 인기래요. 그리고 짠 건 별로 좋진 않죠."
"6.25 때 피난을 갔는데, 그때 너희 큰형을 임신하고 있었잖아. 너무너무 배가 고픈데,
피난 가서 신세 지던 집에서 하~얀 식빵을 구워서 마루 위에 얹어 놓은 거야.
아휴, 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길래,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살짝 꼬집어서 한 입 먹었어. 거의 몇 날을 못 먹고 피난을 왔잖니. 임신한 몸으로.
그랬는데 그 맛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그 맛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어.
물론 마음은 얼마나 두 근 반 세 근 반 하던지. 빵을 요렇게 뒤집어 놓고는 무서워서
그날밤 잠도 못 잤어. 쫓겨날까 봐. 그리고 피난 끝나고 다시 서울 돌아와서 나중에
살만해지고 하얀 식빵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는 하나를 사서 다 먹었다니까."
"그런 일이 있으셨어요? 진작에 사 드릴 걸."
"이제는 그렇게 못 먹지. 그러니까, 얘야, 나중에 새아기가 아기 갖거든, 먹고 싶은 거
생기면 몇 시가 되었건 무조건 다 사다 줘라!"
"아니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하하."
"어머니, 제가 어머니 좋아하시는 빵, 자주 사다 드릴게요.
빵 드시고 건강하기만 하세요. 어머니한테 고단한 피난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그 하얀 식빵이 너무 고맙네요."
"네가 뱃속에서 꼬물거리고 있었으니까. 나도 너 아니었으면 그리 잘
도망 다니지 못했을 거야. 허허허. 애를 지키겠다는 마음에 요리조리 엄청 잘
도망 다녔지. 너의 아버지는 공무원이라 잡히면 정말 큰일이라 어르신들이랑 동굴에
숨어서 나오지도 못했거든."
그때 반포 작은아버님이 다시 입을 여셨다.
"이렇게 우리에게 결핍이라는 것은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고, 또
그로 인한 성공의 경험은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해.
우리 집이 사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거든.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긴 했지만,
우리는 형제도 많았고, 아버지도 공무원 월급이니 우리는 공립대 아니면
못 간다는 생각에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만 했어.
어머님도 고생을 많이 하셨지. 그래도 가족끼리 힘도 합치고 서로 도우면서
여기까지 온 거 같아. "
"그래, 여기 이렇게 투자로 성공한 반포 작은 아빠도 있지, 재테크에 열혈인
중계동작은엄마도 있지, 목동에서 중개사하시는 고모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니?
많이 여쭈어봐. 우리는 너희 편이니까."
"네, 감사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그럼 몇 가지 꼭 명심해야 할 것? 덕담? 부탁드려요."
"글쎄. 우선 아까 조카 보니까 주식투자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주식투자도 좋지만 그전에
우선 내 집 마련을 나는 권해. 내 집 마련이야말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히재 기능이 있는 데다가,
다른 자산에 비해 가격 변동이 심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거든. 아까 말한 대로, 차근차근 해나가면 돼.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도, 너무 큰 집을 살 필요도 없어. 신혼 때는 직장에서 다닐 만한 거리에
역세권 소형 평형을 장만했다가 아이들이 크면 평형을 넓혀가고, 그러다가 아이들이 독립하면
그땐 집을 줄여서 남는 자금을 노후용으로 쓸 수 있다면 우선 그것만으로도 너무 성공적인
내 집 마련 성공투자 스토리가 될 거야. 사실 주식 투자 역시 내 집 마련 하듯 한다면 실패할 확률은
굉장히 낮아져. 내 집 마련을 할 때는 다들 직장과의 거리, 초품아, 주변의 상권이나 공원, 병원,
이런 기준을 어느 정도 정해 놓고 사는데, 주식 투자는 집을 살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그런 기준 없이,
무턱대고 아무 주식이나 사고, 결과를 감당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거든."
"아... 반성합니다 ㅠㅠ"
"그리고 이미 오른 곳보다는 앞으로 오를 곳에 투자하는 것이 투자 성적이 훨씬 좋겠지? 아까 말한
준공업지라든지 공사비 이슈때문에 아직까지 덜 올랐지만 주변 신축가격이 계속 올라주고 있고
공사비 상승률은 둔화되고 있다면 앞으로는 오를 수밖에 없을 거야. 사람들은 강남 대치나 반포 같은 곳만
보면서 동경과 찬사를 보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곳을 사는 것, 그런 안목을 길러야 해.
특히 얼마 전 국민평형이 60억에 거래되어서 온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원베일리 말이다, 하지만
재건축되기 전 경남아파트는 그렇게 선망하는 아파트는 아니었어. 반포, 잠원동에서도 거의 꼴찌 위치였거든. 거주환경도 좋지 않은. 지금의 메이플자이에 포함되기 이전의 녹원아파트도 마찬가지야.
시작은 미약해도 끝은 창대하게 끝날 수 있는 그런 투자처를 찾아 한 발씩 함께 나아가도록 해.
물론 우리도 얼마든지 도와줄 테니까"
고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시간 날 때 퇴근 후에 사무실에 들르면, 집 보는 법, 계약할 때 주의사항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줄게."
"와, 선생님들이시네요. 잘 부탁드려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예비시댁을 나섰다.
"나는 친구들 말만 듣고 예비시댁 가면 전만 부치다 오는 줄 알았어."
"하하하. 내가 우리 집 그런 집 아니라고 했잖아. 우리 엄마 되게 좋지? 다른 분들도?"
"으응, 돈 이야기만 하다 왔네/"
"앞으로 먹고 살 이야기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원래 이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 줘야 하는 건데."
"그럼 우리 내일 퇴근 후부터 열심히 임장? 그거 다녀볼까?"
"그래 좋아, 원래 결혼식 임박해지면 너무 바빠서 집 보러 다닐 시간은 정작 없대."
"기대된다."
"근데 너 그거 알아? 우리 집 재테크 고수는...ㅋㅋㅋ
반포 작은 아빠가 아니라... 우리 할머니라는 거!"
"정말? 어어~그러니까 우리 할머니한테 잘 보이라고.
아마 너 다 가르쳐주실 걸~엄청 너한테 하트 뿅뿅하시던데?"
"응! 나 압구정 사모님 될 거다! 아자"
"야, 아까 우리 작은 아빠가 차근차근 하라는 거, 과욕은 금물이라는 거
잊었냐~"
"아 맞다. 암튼 앞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