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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로 Oct 15. 2024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 어쩌면 우리가 SF를 읽는 이유.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를 따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긴 하지만 – 예컨대, 지구가 둥글고,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건 전 인류의 지평에 크게 이바지한 일임이 틀림없다. 혹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상을 그대로 복제하는 과정이 아니라 적극적인 재구성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또한 그런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를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시대의 지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30년 전, 미래기술이 어떻게 발전할 거라고 상상했는지 아는가? 그들은 우주 콜로니와 해저 도시를 상상했지만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예측하는 대상이 미래 사회라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유토피아인 사농공상이 조화로운 나라는 결국 왕이 있고 백성이 지배를 받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고, 최초의 SF라 규정되기도 하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속 유토피아는, 결국 중세 수도원의 모습을 국가 단위로 형상화한 모습일 뿐이다. 이들은 노래나 독서 말고는 유흥생활을 즐기지 않으며, 사치품을 생산하지도 않는다. 전 국민이 생필품 생산에 참가하며 사유재산이 없고, 당시 가톨릭 수도원들이 그랬듯 공산주의적인 생활양식을 추구한다.


  물론 유토피아가 당시 수도원의 모습을 국가의 형태로 그대로 구현하는 데 그친, 지루한 사고실험의 산물만은 아니다. 가령 유토피아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분명 이는 혁신적이다. 유토피아는 금을 경멸할 것을 교육받으며, 실제로도 경멸한다. 가톨릭 금욕주의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묘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유토피아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유토피아 사람들은 금을 경멸하기 위해서 노예에게 금으로 만든 사슬과 족쇄, 관을 씌운 뒤, 거리에서 그들을 조롱한다. 모어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는 방향까지는,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이유로 조롱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철저하게 매장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강요한다. 유토피아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자기 삶에 당당하지 못한 이들로 간주되어, 장례마저도 제대로 치러주지 않는다.


 이처럼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책조차도 당시의 사회적 편견에서, 세상의 지평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가 이상사회에 대해 상상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사회의 범주는 기껏해야, 완벽한 민주주의, 차별이 사라진 세상, 조금 급진적으로 나가 봐야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를 통과한, 국가를 포함한 모든 억압이 무너진 공산주의 세계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평 너머를 상상할 수 없다면, 결국 세상에 대한 상상은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로버트 a 하인라인의 SF 소설 <스타쉽 트루퍼스>는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답변이다. 이 작품은 유토피아의 모습으로 군국주의 사회를 제시한다. 해당 사회에서는 군 복무를 이행해야만 참정권이 주어진다. 즉 훈련소에서 살인적인 훈련을 받은 뒤, 실제 군대에서 몇 년 동안 복무를 마쳐야 정치인이 될 수 있고, 투표를 할 수도 있다.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중도 포기한 이들은 참정권을 얻을 수 없다. 물론 하인라인이 신체적인 문제를 갖고 있거나, 사고로 인해 군대에서 퇴출당한 이들에게는 참정권을 수여하지 않는 살짝만 봐도 문제가 보이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군대는 입대신청을 거부할 권한이 없으며, 즉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를 이유로 입대를 거부할 수 없으며, 군복무의 포기 또한 강요할 권한이 없다. 한쪽 다리를 잃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고 해도, 당신이 군 복무를 희망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제대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약간의 고등교육을 받았고 충분한 상식을 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하인라인이 쳐놓은 눈가림에 속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까지 당한 시점에서 참정권을 위해 남은 군생활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운 좋게 사고로 끝나는 경우가 아니라 목숨을 잃은 경우는 또 어떤가? 심지어 이는 소설 안의 상황에서도 심상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참정권을 얻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리고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는 작품 내용에서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군대는 질문과 의구심을 허락하지 않고 복종과 규율을 지키는 것만을 강조하는 조직이며, 이는 우주에서 항성간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품내의 설명을 살펴보자. 작중에서 군인들은 작전의 목적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하며, 군인들은 구태여 그 목적에 대해 알려 하지도 않는다. 즉 군대는 근원적인 질문을 없애버리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 없는 조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사례를 알고 있다. 히틀러의 제 3제국은 사회구성자들이 사회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때, 사회가 어떻게까지 잘못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조직 전체의 방향이 잘못됐을 때,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창조해 낸 군국주의 사회를 유토피아로 포장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소설 속에서 사회는 잘 작동되며 군인들은 초인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그리고 작품 내적으로도 해당 사회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제시되지 않는다.


 이처럼 하인라인은 군국주의를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 사회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 때문에 수많은 비판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군국주의 기반의 유토피아 사회를 보여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얻으려 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평을 바로 넘어설 수 없다면 우리가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스타쉽 트루퍼스>를 살펴보았다. 이는 보통 유토피아 소설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기 힘든 정치 체제를 담고 있지만, 엄연한 유토피아 소설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지평 안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섞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고, 그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가 가진 고만고만한 것들의 새로운 측면에 대해 인식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군국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과,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 즉 질문 없는 사회의 문제점이나, 참정권을 얻기 위해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통해, 사실은 <스타쉽 트루퍼스>가 유토피아 사회의 모습을 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참정권이 주어진다는 상황’이 가지고 있는 가치 같은, 존재하지만 기존에 인식하지 못하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예시 속에서는 재인식 정도로 끝나긴 했지만)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고, 전 인류의 지평의 확장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유토피아를 그리고, 디스토피아를 그려야 한다. 우리는 1984부터 온갖 종류의 디스토피아 소설들의 집합 같은 작품인, 할란 엘리슨의 <회계하라 할리퀸, 짹각맨이 말했다>를 읽으며 질서가 자유를 억압하는지, 우리는 얼마만큼의 자유를 원하기는 하는지, 우리는 자유를 위해 부조리에 저항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평 안에서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논의돼 온 일들이지만,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작품속에서 재배열된 요소들을 보고 신선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진부하지만 중요한 요소들을 다시 인식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위해서도, 진부한 것들, 혹은 진부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섞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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