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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억만개의 치욕 Sep 30. 2024

신짜오 비엣남-서호 나들이

#2. 주말  - 호떠이(서호)

나는 호안끼엠밖에 몰랐다. 하노이에 서호(Hồ Tây)가 있다는 것도, 그게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것도 몰랐다. 2023년에 롯데호텔엔리조트 1호점' L7 하노이가 오픈해 지금은 더 핫해진 서호를, 처음 그랩을 타고 방문한 것은 2022년 3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길을 가득 메우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경적소리, 사람과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가 제각각 길과 방향을 창조해 달리는 이 도로의 대혼란은 수시로 내 심장을 떼었다 붙였다 했다. 이 무질서 속에서 흐르듯 살아가는 그들만의 질서가 신기하고 신기했다. 입성 초에는 도로를 건너지 못해 망설이기 일쑤였고 행여 오토바이가 옆을 지나면 깜짝깜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었다. 한 번은 당황하던 나와 딸을 보다 못한 어느 여대생이 우리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주기도 했었다. 도로 건너기는 나보다 딸아이가 먼저 터득했지만 나 역시 뭐든 터득해야만 했다. 도로 건너기도, 지폐 구분도, 물가 이해도 해야만 했으니까… 물론 지금은 어디서든 길을 건너고 오토바이로 현지인들의 길에 동참하며 살고 있다. 내가 하노이를 받아들인 것인지 하노이가 나를 받아들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땐 용다리 앞에서 내려 구글맵을 켜고 무작정 걸었다. 벽화 거리를 지나 꽃정원까지 서호 주변을 돌았다.  서호는 걸어서 한 바퀴를 다 돌 수 없을 정도의 큰 호수다. (나는 다음 해, 서호 근처로 이사를 했고 나의 오토바이로 서호를 여한 없이 돌아보게 된다) 여기저기서 사진도 찍고 여행 온 것처럼 낯선 풍경과 마주했다. 이때만 해도 그랩 기사도 믿을 수 없어 매번 구글맵을 켜고 차량 이동을 감시했고, 행여나 나쁜 마음으로 나를 속이지는 않는지 식당이나 카페 직원들도 의심에 의심을 하면서 눈에 잔뜩 힘을 주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낯섦은 이국적인 것이었고 어딜 가나 신나고 들떴던 시절이기도 했다.(요즘 나는 하노이의 어떤 것에도 들뜨지 않는다)


나는 서호의 석양을 좋아하고 각양각색의 카페와 노천펍을 좋아한다. 구석구석 맛집들과 개성 있는 편집샵들도 볼거리다. 지금은 한인타운이 있는 미딩으로 이사 왔지만 작년, 서호가 가까운 시푸차에 살 땐 주말이면 브런치 먹으러, 커피 마시며 지는 해 보러 많이도 갔던 곳이다. 노을 지는 하늘을 보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매번 돌이켜 보곤 했다.

(이 사진은 4월에 다시 간 서호)

그러나 매일 집안일에, 아이 케어에, 직장 적응에, 무엇보다 생활바보(흔한 슈퍼마켓의 위치도, 어디에 무엇을 파는지도 모르겠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길을 잃기 일쑤였다)가 된 나를 견디느라 정신줄을 붙잡아야 했고 정신적 피로감이 상당했다. 식구가 넷에서 둘로 줄었어도 밥, 빨래, 청소는 매일 해야 했고 무엇보다 혼자 아이를 케어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남편과 가사와 육아를 합리적으로 분담했기에 아침 출근 준비로 바쁠 때 일 손을 덜어줄 남편의 부재가 매일 아침 울컥 목구멍을 쳤다.. 늘 긴장되었고 늘 불안했다.


리모컨의 건전지도 끼워본 적 없었다는 것을 안 것도 이때였다(나는 건전지를 바로 끼우지 못해 딸아이가 했다) 무거운 짐을 들 일이(특히 생수) 생기면 그저 화가 났다. 초반에 이 모든 불안과 불편을 그대로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던 나의 부족함은 아이를 철들게 했고, 아이를 슬프게 했다.  남편은 최선을 다했다. 줌으로 학부모회도 참가하고 아이 방과후학교 신청 광클릭도 성공했고 내가 야근인 날은 혼자 있는 딸의 원격 육아를 했다.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의 나는 모자람 투성이었고 그것들은 정제되지 않은 채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불쑥불쑥 클로즈업된 영화 장면처럼 나를 괴롭혔다. 마흔이 넘어도 이렇게 밖에 못하는게, 제자리인게 한심했다. 나는 내가 그토록 부족한 인간이었음을 처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부딪쳐보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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