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노이 근교 당일치기 여행
2022년 2, 3월의 하노이는 코로나로 인해 여전히 경직되어 있던 시기였다. 봉쇄와 격리에 대한 정책은 점점 완화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식당엔 가림막이 있었고 모두들 마스크를 의무착용했으며, 바이러스가 실린 몸에 대한 공포와 서로 간의 경계심이 여전했었다. 그러다 4월에 접어들어 슬슬 학교들이 대면 수업을 재개했고 코로나가 진정이 된 건지 더는 견딜 수가 없었던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날도 따뜻해졌다.
4월 10일 토요일. 주말에 집 근처나 하노이를 간간히 돌아보는 정도로 워밍업 했으니 이제 근교 여행을 시도하기로 한다. 패키지여행을 싫어하는 나로서 짜인 일정에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여야 하는 투어는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아직 베트남에 대해 모르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아 주말 나들이 겸 답사 겸 클룩으로 투어 예약을 했다. (이후 나는 닌빈에 자유여행으로 두 번이나 더 다녀왔으니 답사는 성공한 셈이다)
투어는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에 7시에 집결하여 바이딘 사원을 보고 닌빈에서 보트를 타고 항무아까지 둘러보는 코스였고 점심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의 목적은 항무아에 가보는 것이었기에 다른 코스는 덤이라 생각했다. 집에서 오페라 하우스까지는 그랩으로 30분이 넘게 걸리므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아이 밥 먹이고 간식 등을 챙겨 서둘렀다. 7시에 도착하니 각종 여행사에서 모집한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우처를 확인하고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출발이 안된다. 인근 호텔 픽업이 포함된 관광객들을 픽업하느라 딜레이가 되고 있단다. 시간 강박이 있는 나는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에 화가 났지만 베트남이니까… 일단 참아본다.(아직도 시간문제는 여전히 숙제다. 2시에 약속을 하고 4시가 넘어오거나 1시 약속인데 11시에 오는 베트남 사람들이 나의 이웃임이 아직 힘들다)
투어 버스에는 나와 딸아이, 일본 아저씨 2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웨스턴이었는데 염소고기가 유명한 닌빈의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미국 청년과 일본 아저씨들, 싱가포르 여대생과 짧고 무성의한 대화들이 오고 간 것도 같다. 같은 버스를 탈뿐 그 외에는 서로 관심을 두지 않고 각자의 여행 목적에 충실했다.
사실 하노이 하면 하롱베이가 더 유명한데 닌빈은 먼저 여행한 부모님이 추천하기도 했고 언젠가 우연히 보았던 박나래가 짠내투어에서 다녀간 그 장면들이 인상적이어서 하롱베이보다 먼저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남아 여행을 많이도 했다 싶었는데 베트남에 대한 기억이 크게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매력 없는 나라가 베트남이었는데…
바이딘 사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남아 최대 사원단지답게 규모면에서 압도적이었다. 규모의 명성에 맞게 세 개의 전각에 모셔진 크고 화려한 불상들과 회랑을 채운 500개의 불상을 지나 12층 높이의 대형 불탑에 오르는 게 하이라이트였다. 부처의 사리를 모셨다는 탑 정상에 오르면 사원뿐 아니라 닌빈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사원 자체의 건축 품격이나 불상들의 수준은 역시 우리나라를 따라오지 못한다. 뭔가 조잡해 보이는 불상들보다 넓은 사원 터와 동남아풍의 조경이 차라리 기억에 남는다.
육지의 하롱베이라 불리는 짱안에서의 보트 투어는 고요한 강물을 가르는 노를 따라 일렁이는 물결과 동굴과 나무들과 암벽들이 동시에 소리 없이 진동하는 육중한 공기가 훅 다가오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자 뜨거운 햇살에 몸을 내어주고 작은 나무배에 구겨 앉아 있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풍경에 감탄했던 마음은 이내 이 정도면 될 것 같다는 짧은 만족으로 대체되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항무아에 갔다. 두 개의 항무아 전망대 뷰포인트는 역시나 기대 이상의 장관이었다.
(이 사진은 투어 때가 아닌 두 번째 닌빈 방문 때 항무아에서 찍은 사진이다) 항무아의 아름다움은 내가 닌빈을 두 번이나 더 가게 한 이유다. 이렇게 나의 첫 닌빈 여행은 당일치기였고 항무아에서 내려온 것이 저녁 6시가 넘었을 때라 하노이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넘었다. 피곤했지만 첫 여행, 아니 답사는 나름의 동기부여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