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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억만개의 치욕 Oct 31. 2024

My story

b5. 집착 - 그 결핍

결핍은 집착을 낳는다. 고로 내가 집착하는 모든 것들은 내 결핍의 소산이다.



<우산>

비 오는 아침이면 작고 예쁜 핑크색 우산이 딸아이의 책가방 옆 주머니에 잘 꽂혀 있는지 확인한다. 물론 비가 오든 안 오든 1년 365일 그 우산의 자리는 거기다. 희한한 건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꺼내 쓰지 않는 딸아이다. 물론 스쿨버스를 타고 내리는 잠깐 사이만 비를 피하면 될 일이나 그래도 우산이 있는데 왜 우산을 쓰지 않는 건지...... 애가 탄다 정말.


나는 우산을 여러 개 산다. 많이 산다. 사는 만큼 잃어버리고 잃어버리면 또 넉넉하게 사둔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는 것을 참지 못한다. 물론 갑자기 내리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을 때가 있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우산이 '없어', 우산을 살 수 '없어' 비를 맞지는 않는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우아하고 세련된 엄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침 등굣길에 멀쩡한 우산 하나 정도는 챙겨줄 수 있는 엄마이지 그랬을까. 가끔 우산 살이 망가져 제 모양이 안 나오는 우산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그조차 없을 때는 비를 맞고 가기 일쑤였다. 형형색색에 심지어 자동우산을 들고 다니는 부잣집 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 어린 시절 가난은 이렇게 비와 함께 내리기도 하였던 것이다.


쿨하게 웃으며 비 조금 맞는 것이 뭐가 문제냐 되묻는 아이에게 산성비로 인한 탈모와 감기 걸릴 가능성 등등을 궁상맞게 운운하다 이내 화를 참지 못하고 "우산 쓰라고! 우산이 없어? 왜 안 쓰는데!!"하고 윽박지르고 나서 생각한다. 이 아이는 늘 우산이, 예쁜 우산이 준비된 집에서 태어나 우산을 강박적으로 챙기는 엄마와 산 탓에 우산이 없어본 적이 없구나..... 그랬구나......


우산을 쓰지 않고 가거나 비를 맞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면 우산부터 들이대는 버릇은 아마도 그 결핍에서 비롯된 집착일 것이다. 그냥, 재미로, 심지어 귀찮아서 비를 맞는 아이들을 굳이 그렇게 안쓰럽게 볼 일이었을까.


비는 더 이상 가난하게 내리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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