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살 때부터 소설을 썼다. 물론 소설이라고 쓰기도 민망한 글 쪼가리들일 뿐이지만. 일단 시작은 그때이고 지금은 16살이니 한 7년 정도 소설을 쓴 셈이다. 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거의 매일 1시간씩, 중학교에 올라오고 나서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씩 투자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하루에 6시간은 기본으로 썼다.
그러나 내가 소설 쓰기에 쏟아부은 시간이 또래보다는 많은 편인데도, 난 여전히 처음과 같이 삼류 작가일 뿐이다(처음에는 삼류 작가라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엄청 못썼지만, 그나마 발전한 게 이 정도라는 게 통탄할 따름이다.). 묘사도 어색하고, 가끔씩은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첫 문장부터 막히고, 자극적인 글만 쓰려고 하고... 나는 겉멋만 잔뜩 들고 머리는 텅텅 빈 소설 작가라는 허울만 쓴 멍청이일 뿐이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만둘 수 없는 건 내가 소설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정확히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TV를 엄청 좋아헀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교육자이신 데다가 엄청나게 보수적이고 자신만의 교육관이 뚜렷하신 분이셨는데, 그래셔 내가 화면이 있는 전자기기를 보고 사용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셨다. 엄마의 교육관에는 '아이가 전자기기를 너무 많이 보면 교육에 좋지 않다'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으므로. 엄마는 안 좋아하고 못마땅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내 TV 시간을 하루에 1시간으로 규정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도록 강제(이 말을 들으면 엄마는 엄청 싫어하실 것이란 걸 알지만 당시 나에겐 강제로 느껴졌다.)하기까지 했다.
당시에 엄마가 읽게 했었던 책들이 엄청 대단하고 두껍고 이런 책들은 아니었다. 그냥 내 나이에 맞는 얇은 어린이용 동화책이었다. 세부적으로 종류를 나누자면, 어린이용 탐구 동화, 어린이용 서양 명작 동화, 어린이용 우리나라 전래 동화 등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각적으로 자세한 묘사가 나오는 영상 매체가 아닌 글로써의 묘사만 조금 주어지고 나머지는 내가 다 상상해 내야 하는 것을 읽는 것이 엄청난 불만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갈수록 그게 글의 묘미라는 것을 알고 빠져들기 시작했다. 글은 아무리 자세하게 표현한대도 틈이 있기 때문에 그 틈 사이를 상상하고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나는 점점 글에-정확히는 이야기들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 시작된 것 같다.
나에게 펼쳐진 이야기의 향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왜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 나는 차에 타는 일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항상 서양 명작 동화나 우리나라 전래 동화를 녹음한 CD를 틀어주셨다.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가진 어떤 전자기기도 없었고, 우리 부모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설령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나에게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틀어주는 일은 없었기에 지루한 차 안의 유일한 유희거리인 동화 CD를 경청해서 들었다. 그 CD들에는 여러 효과음과 배경음악이 풍성하게 나오는 데다 인물별로 성우도 달라서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열심히 듣다가 급기야는 CD들에 나오는 모든 동화의 제목과 그 동화들의 대략적인 내용을 외우기에 이르렀고, 동화들이 플레이되는 순서들의 패턴까지도 꿰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고 읽으면서 7살이 됐다. 이야기에 빠져 살던 나는 어느 날 한 이야기를 창조해 냈다. 어딘가에 써놓지 않았기 때문에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렇지만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고 동화 느낌이 나는 아주 짧은 이야기였다는 건 기억이 난다. 또 아주 어색하고 개연성은 팔아 치웠으며 초라한 이야기였다는 것도. 하지만 내가 그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나는 창작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달콤한 지도 알아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항상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상상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9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소설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 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쓰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쓰진 않고 생각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고 아깝다. 그걸 그때 써놨으면 지금 그걸 보고 더 좋은 이야기로 발전시켰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유치원을 졸업하기 전에 한글을 떼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맞춤법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나서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작가가 아니면 쓰면 안 되니까, 안 들키고 쓰면 돼!'라고. 그렇게 3년 동안 완결도 안된 미숙한 작품들을 수기로 여러 개 썼다. 3년 간 내가 읽는 책들은 점점 두꺼워지고 내가 읽는 글들은 점점 어려워졌으며 내 어휘의 수준은 점점 높아졌다. 또 그 기간 동안 나처럼 이야기 쓰는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서 그 친구들이랑 팀을 이뤄 같이 글을 쓰기도 했다.
그 3년이 지나고 나서 코로나 시대가 도래했다. 아빠는 코로나가 한참일 때도 회사에 나가고 출장을 가는 일이 잦았다. 엄마는 재택근무를 하실 수 있었지만 원격 수업을 하려면 학교에 있는 장비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평일에는 늘 학교에 갔다. 그때 나는 왜 갑자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있던 구형 노트북으로 몰래 인터넷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는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검정색 노트북이 있었지만, 그 노트북은 엄마가 자주 보는 데다가 사용 기록이 남기 때문에 가족들이 잘 보지도 않고 사용 기록도 남지 않는 구형 노트북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그때로부터 1년 전부터 나만의 핸드폰-폴더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내 전화번호를 네*버, 구* 등 여러 사이트의 계정으로 만드는 것에 아주 알차게 써먹었다. 그렇게 만든 네*버 계정으로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유튜버의 공식 팬카페에 가입했는데, 그때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 카페에 '소설 게시판'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올린 흔적들이 있었고,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아, 작가가 아니어도 소설을 써도 되는구나!'라고. 그때부터 나는 엄마 아빠한테 내가 소설을 쓴다는 걸 숨기진 않았고(물론 보여주진 않았다. 그리고 수기로 쓰는 척만 했다. 인터넷을 몰래 한다는 걸 걸리면 혼날 테니까.), 그 카페에다가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인터넷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게 되면서 내가 읽는 글들의 폭이 넓어졌다. 내가 전에 봤던 글들은 다 출판된 책에다가 학교 도서관에 있는 모범적인 책들이 대다수였는데 인터넷을 시작하면서 웹소설도 읽고,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설에 대한 피드백도 주고받았다. 그렇게 내 소설 쓰기 실력이 꽤 향상되는 것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해 말 부모님께 인터넷 하던 걸 들켜서 네*버 계정을 삭제해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했던 일이 부모님이 그렇게 화를 낼 정도로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해에 원래 친구들이랑 만들었던 소설 쓰기 팀이 깨지는 바람에 나는 그 팀에서 나랑 친했던 애들만 모아서 함께 새로운 팀을 만들었다. 그게 내가 지금 속해있는 Team. 마그리타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곳에 속해있고, 멤버들과 소설을 쓰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간간히 개인적인 이약기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때부터 난 수기가 아닌 컴퓨터로 타자를 쳐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
또다시 다음 해에 난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 병동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적인 데다가 전자 기기 반입이 금지라 컴퓨터 타자에 길들여진 나에게 수기로 글을 써야 한다는 건 꽤 힘들었다. 그래서 정신 병원에 있는 세 달 동안 소설 쓰기를 잠깐 놓았다. 그리고 퇴원하고 다시 컴퓨터를 켰는데, 소설이 써지지 않았다. 그야, 3개월간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았으니까 그동안 들어온 것도 없으니 감이 다 죽고 써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난 그냥 소설 쓰는 걸 포기했다. 꽤 절망스러웠지만 뭐 어쩌겠어, 글이 안 나오는데. 그 뒤로부턴 내 속이 뭔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것이 빠져나갔으니까 그럴 수밖에.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다시 입원해 정신 병원에서 6개월을 보냈다. 난 A 병원에 있다가 그 병원에 입원한 해로부터 다음 해 1월 중순에 B 병원으로 옮겼는데, B 병원에 오고 나자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갑자기 소설을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고 나서도 항상 그러고 싶었지만, 그때까지는 엄두가 안 났다. 그런데 그제서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B 병원에는 책도 많고 일주일간 생활을 잘하면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씩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그곳에서 비는 시간마다 책장에 있는 소설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인터넷 시간마다 웹소설을 찾아 읽었다. 또 밤에는 취침 시간보다 한 시간씩 더 깨어 있으면서 뭐든지 닥치는 대로 썼다. 그렇게 읽고 써도 아이디어는 쥐똥만큼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나름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렇게 병원 생활을 보내고 그 해 7월 중후순 쯤에 퇴원했다. 나는 다시 예전처럼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지금이 더 잘 쓰는 것 같다. 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다시 내 삶에 들어와서 정말 기뻤고 그것이 내 의지로 되돌리는 것이 가능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게 지금이다. 나는 퇴원 후에 쓴 글들(소설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을 어쩌다가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준 적이 있는데 다들 잘 썼다고, 속편도 써주면 안 되느냐고 말을 해줘서 앞으로도 정말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나는 예전부터 같이 글을 쓰는 파트너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면 내 글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좀 있었는데 사람들의 칭찬 덕분에 그 거부감이 조금 가셨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야기와 함께 걸어온 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힘들 때도 있었지만 거의 평탄하게 걸어온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쓰고 싶다. 난 사람들을 웃게 하고 울게도 하는 글을 쓸 거고, 끝내는 희대의 명작을 써내고야 말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와 함께 걸어온 길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