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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리아라 Oct 06. 2024

편지

내가 좋아했던 너에게

안녕. 나야. 넌 브런치를 안 하니까 이 글을 읽을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글을 너가 봤으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안 봤으면 좋겠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여기에 올릴게. 어차피 넌 내 필명도 알고 내가 브런치에서 활동한다는 사실도 알잖아. 네가 내 글을 읽고 싶다면 인터넷에 검색해서 볼 수도 있겠지. 별 관심이 없으면 안 볼거고. 아무튼 서론은 거두절미하고 시작할게.


넌 너가 내 첫사랑인 거 알려나 모르겠네. 넌 내가 너한테 직접적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내가 널 좋아하는 것도 모를 정도였어. 내가 매일같이 너한테 그렇게 애정을 담아 말하는데도, 넌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바닥이었으니까. 넌 항상 내가 장난치는 줄 알았겠지.


그래서 난 답답했어. 난 널 정말로 좋아하는데, 넌 그저 내 모든 행동을 장난으로 치부했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고도 생각했어. 너랑 나는 성향이 완전 달라보였거든.


난 노력 많이 했다? 너랑 전혀 닮지 않은 사람들을 억지로 만나면서 너를 잊으려고 했어. 널 좋아하면 내 마음이 까맣게 곪도록 고통스러워질 뿐이란 걸 무의식적으로 깨달아서 그런 걸 수도 있어.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보답받지 못할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포기도 안되고 좋아하는 마음도 접히지를 않더라. 그게 너무 괴로웠어. 내가 정신병원으로 도피한 이유 중 하나도 그거야. 물론 그것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잖아. 그래서 그랬던 건데, 헛수고였어.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더 심해졌으니까.


그래서 혼자서 죽이려고 했던 마음을 기어이 너한테 털어놓게 되더라. 내가 그때 전화로 한 말 기억 나? 내가 너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좋아하는 거 아냐고, 나랑 사귀어 주면 안되냐고 했던 거.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찌질하고 별 볼일 없는 고백이었는데 넌 그걸 받아줬어. 나는 그 날 너무 기쁜 나머지 병원 전체를 환호하면서 뛰어다녔어. 결국 간호사 선생님들이 너무 흥분했다면서 안정제를 주사하실 정도였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 너랑 사귀는 게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았어. 우리의 전화는 언제나 1분 내로 끝났고, 너가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만 계속 들어서 노심초사하게 되더라. 너가 날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어. 그리고 알잖아. 우리가 사귀게 되면 몇몇은 몰라도 온 세상이 우릴 축복하진 않으리란걸. 사람들이 널 혐오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걸 생각하니까 너무 슬펐어.


결국 난 널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던거야. 그래서 우리가 사귄지 한달도 되지 않아서 난 너에게 이별을 통보했지. 그리고 우린 사귀기 전처럼 친한 친구 관계로 돌아갔어. 그래, 우리한테 맞는 관계인데 난 이상하게 허전하고 마음이 아프더라고.


그리고 나서 몇주 뒤에 너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내가 직접 찬 주제에 웃기지만 좀 씁쓸했어. 그래도 내색은 안하고 널 축하해줬지. 그렇게 몇개월이 지났어.


난 이제 널 완벽하게 잊었다고 생각해. 내가 널 잊으려고 그렇게 발버둥 칠 때는 잊히지 않더니, 그냥 가만히 있으니까 스르르 잊혀지는게 아이러니하더라. 이제 난 널 좋아하는 마음을 품은 채로 누군가를 만나서 죄책감 가지는 일은 없어. 너도 지금 남자친구랑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나중에 성인 되서 결혼 할 때 청첩장 꼭 줘. 내가 부케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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