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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뵈뵈 Dec 03. 2024

내가 만난 산 2

- 중국에서

<동우령, 중국 대련 소재>


2012년 우리 가족은 한국을 떠나 요동반도 최남단에 있는 해양도시이자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신 안중근 의사의 정신이 살아있는 도시, 중국 대련으로 거주지를 옮겨 생활하게 되었다. 대련에서 근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들어서기 전 그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고 하는데, 몇 년이 지난 후 아파트 단지가 우후죽순 들어서 널따란 주택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곳의 행정구역상 명칭이 경제개발구(经济开发区)인데, 우리나라의 분당, 판교, 동탄 등의 신도시와 같이 새로 개발된 지역이었다. 우리는 학교 근처의 아파트 중 한 군데를 정해 중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동우령(童牛岭)집 근처에서 만난 산이다.  어린아이가 소를 타고 넘은 고개인지, 어린아이가 소를 타고 있는 모습을 한 고개인지 이 산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 산을 자주 갔으니, 산이름에 있는 어릴 동(童) 자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집에서 10분쯤 걸으면 산 입구에 이르고, 정상까지는 차로 오를 수 있게 길도 잘 닦여 있다. 우리는 항상 도로변을 따라 굽이 굽이 걸어서 올라가곤 했다. 동우령 정상에 오르면 검푸른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개발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우주 비행선 모양의 전망대가 보인다. 밤에는 조명이 들어와 멀리서 보면 정말 UFO가 그 산에 착륙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집 가까이에 그리 높지도 않아 부담 없고,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딱히 다른 오락거리를 찾는 대신 자연 속에서 놀게 하기 위해 아이들과 이 산에 자주 올랐다. 동우령을 생각할 때 몽글몽글하게 떠오르는 추억이 많다.

어느 봄날엔 도시락을 챙겨가 소풍을 하고, 어느 여름날엔 산 중턱에 있는 저수지에서 새끼 개구리 떼를 구경하고, 어느 가을날엔 산자락에 있는 울퉁불퉁 암벽 사이에 아이들이 한 명씩 올라가 포즈를 취하면 사진 한 장 찍어 주고, 어느 따뜻한 겨울날엔 너른 벌판에서 연을 날리기도 했다. 특히 새해 첫날이면 한인회에서 '동우령에서 일출 보기' 행사를 매년 개최해, 추운 날 아이들과 함께 가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내려와선 학교 식당에서 교민들이 준비해 주신 '떡국'을 먹었었다.


동우령에 자주 오른 경험 덕분인지 우리 아이들의 미술작품에 동우령이 등장했다. 큰 아이가 미술시간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정상에 있는 UFO전망대를 깔끔하게 표현했고, 막내는 다섯 식구의 동우령 등반 모습을 아기자기하게 그렸다.

큰 애 작품
막내 작품

둘째 아이는 중학생이 된 후 어느 땐가 갑자기 그리고 싶은 열망이 솟아올라 붓을 들었다며 우뚝 솟은 산과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그려 보여주었다.

둘째 작품

그림을 그릴 때 동우령에서 봤던 일출을 기억하며 그렸을 거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동우령에서 적어도 세 번 정도 보았던 일출의 인상이 아이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이렇게 표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억측 아닌 억측을 해 본다. 세 아이 모두 동우령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겼다는 이 이야기의 한 퍼즐조각이 딱 들어맞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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