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창으로 내다보면 저 멀리 우뚝 서 있는해발 663m의 돌산. 이 산은 멀리서 보았을 때나 직접 올랐을 때도 눈에 띄는 것이 온통 '돌'이라서 나는 '돌산'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산의 암석이 늘 연한 검은빛을 띤다 하여 '대흑산(大黑山)'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이 산에는 고구려시대에 쌓은 비사성(卑沙城)의 성벽이 남아 있다. 대련을 방문하면 고구려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이 산을 찾는 한국인들도 꽤 있다고 한다.
나는 다만'산이 거기에 있으므로'그 산을 찾았다.
특별히 나를 유혹한 건, 4월이 되면 그 산을 온통 뒤덮다는 진달래꽃 소식.
4월 마지막 주에 다녀오신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진을 보고, 5월 노동절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가족들을 재촉해대흑산에오르자고 하였다.
제안한 사람은 나지만, 막상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 가장 숨 가빠하고 뒤처지는 사람이 나다.
친절하게 정상까지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등반하기 어려운 산은 아니었지만, 가장 난코스는 산이 가팔라지는 어느 지점에 높이 세운 사다리 같은 철계단을 오르는 것이었다. 계단은 올라가는 방향으로 하나, 내려오는 방향으로 하나 있었다. 그 계단의 너비는 한 계단에 한 사람씩만 설 수 있을 정도여서, 사다리를 타고 한 줄로 서서앞사람의 엉덩이를 보며 '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 오르는 사람이 많아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서 가뿐 숨과 무거운 다리를 달랠 수 있었다.
그 철계단을 통과해 얼마를 조금 오르면 '석고사(石古寺)'라는 절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제 정상에 도달했다는 표시이다. 그 절 너머에 진달래꽃으로 덮인 산등성이를 볼 수 있다는데, 큰 애가 오후에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어 부지런히 내려와야만 했다. 큰 애의 이유가 없었더라도 다시 한 고개를 넘어갈 수 있었을는지는 의문이다.
진달래꽃 장관을 직접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대흑산 산행이가르쳐 준 것들은 많다.
◇ 산에 오르기 전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였던 곳을 한걸음 한걸음 뗄 때마다 탐험하게 된다.
◇ 오를 때마다 산이 보여주는 여러 얼굴의 절경에고단함을 잊고 여기에 와 있는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
◇ 일상의 장면을 조금만 벗어나도 녹음의 싱그러움을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 왜 산에 오르는지 그 이유를 조금 알게된다.
<봉황산, 중국 연대 소재>
우리 가족의 중국 살이의 전반 6년은 대련에서, 후반 6년은 중국 산동성에 있는 연대에서 펼쳐진다. 이 후반부에 그 역시 집 근처에 있어 쉽게 마음먹고 산책 겸 운동 삼아 찾기 쉬운 '봉황산'을 만났다. 이 산은 정말 동네 앞산이라고 할 정도로 접근성이 좋고, 출근길마다 지나쳐 계절별 옷 색깔의 변화, 심지어 날씨에 따라 바뀌는 매일의 자태를 확인할 수 있는 친근한 산이다.
이사 온 첫 해에 어느 더운 8월의 토요일에 온 가족이 한 번,
출근 전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는 동료샘이랑 어느 토요일에 한 번,
늘 두 아들을 돌보느라 자신만의 시간이 아쉬운 동료샘에게 가을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 어느 늦가을 토요일 아침에 다른 동료샘 한 분과 함께 한 번,
어느 긴 국경절 연휴의 끝자락에 산책 겸 운동을 위해 남편과 한 번,
같은 아파트 주민이 된 동료샘 두 분과 어느 초봄에 꽃망울이 얼마나 생겼나 보러 한 번.
오른 횟수를 세어보니 딱 다섯 번으로 손이 곱혀지긴 하지만, 매 번 함께 한 사람과 때가 달라 각각의 산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울 언니 말처럼 산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서 오라'라고 손짓하나 보다. 그 손짓에 응답해 때때로 누군가와 올랐으니 말이다.
연대에서는 산행도 있었지만, 해변길 산책을 꽤 많이 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사는 아파트 단지가 10분만 걸어 나가면 해변가가 나오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이다.
누군가 당신의 중국에서의 생활을 한 단어로 정의해 보라고 요청한다면, '고요'라고 답하겠다. 주말이 되면 자주 찾아오는 경조사 챙기기나 시댁 다녀오기, 자녀들 토요 프로그램, 교회 모임등의 바쁜 일정이 모두 내가 들어온 이 진공관 밖으로 밀려나가 버리고,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고요한 주말 오후엔 늘 산책을 하러 집을 나섰다.
가로수를 한 번 올려다보고,
잘 단장해 놓은 화단의 꽃을 한 번 바라보고,
바닷가 가기 전 거치는 작은 휴양림에서 해먹이나 텐트를 치고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음미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드넓은 바다가 나를 반긴다.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하늘,
구름,
바다,
모래
그리고
나.
때론 파랗고
때론 연분홍에서 연보랏빛
때론 짙은 회색
때론 불타는 붉은색.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차오르고,
돌아서서
다시 걸으면서
주님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지나온 날들 동안 감사하는 일들,
현재에 마음 쓰여 지혜를 구하는 일들,
장래에 소망하는 일들을
그분께 아뢰며
이 여유로운 시간을
허락하심에 무한 감사를 드린다.
많은 분주함으로 에워싸여 있지 않은
이 시간 동안
당신과 개인적이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걸 배워, 깊이깊이 배워
다시 분주함으로 에워싸이게 되더라도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게,
어떤 것도 흔들어 놓을 수 없는
'견고한 무언가'를
내게 심어주시기를 기도한다.
이런 산책의 시간은 주님과 나만의 비밀 데이트 시간이었다. 남편과 자녀들을 떠나 오롯이 주님과 나만이 함께한...
하지만 비밀이라는 것은 없다. 비밀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꼭 그 비밀을 꺼내놓기 시작하니까...
조용해서 좋았고, 내 속에 있는 걸 다 내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대화할수록 그분과 더 가까워져서 좋았다.
걸으면서 발견하게 된 이 '보물' 같은 시간이 정말로 귀하고 좋았다.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빌 4:7] 그러면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RV, KG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