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장애와 신경다양성 (4)
사회성과 사교성 구분하기
아이가 말이 없고 낯가림이 심하면 아이의 사회성이 낮은 것 같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아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금세 다가가서 말을 걸면 사회성이 매우 좋다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낯가림이 있다고 사회성이 낮은 것도 아니고 낯가림이 없다고 사회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낯가림의 유무와 사회성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이러한 오해는 사회성과 사교성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성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사회성: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인격, 혹은 성격 분류에 나타나는 특성의 하나로,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성 따위이다.
내향적이며 신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는 다른 사람과 원만한 의사소통을 위해 사회적으로 적절한 표현을 찾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말이 없고 낯가림이 심하다고 해서 사회성이 낮다고는 볼 수 없다.
반대로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쉽게 말을 거는 것은 사회성이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리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사회성이 높다면 말을 할 대상과 타이밍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과 관계없이 계속 아무에게나 적절하지 못한 타이밍에 말을 건다면 사회성이 낮은 상태에서 사교성만 높은 것이다.
사교성: 남과 사귀기를 좋아하거나 쉽게 사귀는 성질.
아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사교성과 사회성을 구분하여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사교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회성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필수로 익혀야 하는 생존의 영역이지만 사교성은 사람마다 다르게 타고난 특성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교성이 높아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자폐인의 성격 유형
비슷한 맥락으로 자폐인들은 모두 내향적일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있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의 범주에 있으면서도 외향적인 사람들도 있다. 앨리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앨리스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누굴 만나도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다가간다. 하지만 사회성의 부족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접근 방법이 서툴고, 눈치가 없어 (특히) 또래로부터 항상 배척을 당한다. (또래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너무 속상해서, 한때는 정말 아이가 자폐라는 말처럼 세상으로부터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책 “루돌프 코는 정말 놀라운 코 (고윤주, 2020)”에서는 자폐인의 성격을 결정하는 2가지 큰 축을 소개한다. 첫 번째 축은 “내향적인가/ 외향적인가”, 두 번째 축은 “친사회적인가/ 반사회적인가”이다. 이 기준에 따라 자폐인의 성격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내향적이면서 친사회적,
-두 번째, 내향적이면서 반사회적,
-세 번째, 외향적이면서 친사회적,
-네 번째, 외향적이면서 반사회적
물론 사람의 성격을 칼로 무 자르듯이 정확하게 나누기 어려운 것처럼 자폐인들의 성격도 이 네 가지의 유형 중 어느 한 가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도 외향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앨리스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폐인들도 분명히 있다.
외향적인 성격이 내향적인 성격보다 좋을까?
흔히들 외향적인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보다 성격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자폐가 있는데 외향적인 경우에는 어떨까? 애석하게도 외향적인 자폐인들은 성격이 좋다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적다. 외향적인 자폐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접근하여 말을 거는 등 사교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낮은 사회성으로 인해 사회적 실수를 하게 될 가능성 또한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앨리스의 경우에도 그랬다. 앨리스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수십 번씩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 한 두 번은 가벼운 인사와 스몰토크이다 보니 아이가 실수할 일이 적었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사회적인) 실수가 잦아졌고 순식간에 주변의 시선은 냉담하게 바뀌었다. 그래서 아이의 외향적인 성격은 나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특히 앨리스가 잘 모르는 또래들에게 다짜고짜 다가가서 놀자고 제안하고 거부당하는 모습을 볼 때는 정말 놀이터에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앨리스가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왜 하필 이렇게 외향적으로 태어났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본다면 앨리스의 외향적인 성격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앨리스는 여전히 실수를 해도 괜찮은 어린 나이이며, 이런 외향적인 성격 때문에 (비록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아이가 수많은 도전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기술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앨리스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부를 당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나도 이제는 양육자로서 앨리스가 실수를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는 것을 마음 아파하기보다는 아이가 실수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적응 능력을 익히는 것을 기뻐하기로 했다. 다만 아이가 잦은 거절로 인해 세상을 미워하지 않도록 아이의 감정을 보듬어주고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사회적 기술을 꾸준히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