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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 'The Dead Dance' 리뷰

by 참지않긔






가가는 늘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반드시 모두에게 박수받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신곡 'The Dead Dance'를 처음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기대는 컸다.

팀 버튼이라는 이름과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상상은 이미 한 발 앞서 달려 나갔다.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장면들, 음산하면서도 농담처럼 흘러가는 풍경, 그런 이미지들을 기대했는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건 조금 다른 것이었다.

세련되었지만 위험하지 않았고, 기묘했지만 끝내 안전했다.

그 순간 나는 약간의 허전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음악이 나를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노래 자체는 묘하게 끈질겼다.

단순하다고 생각했던 후렴이 어느새 머릿속을 점령했다.

마치 의도적으로 머리를 비워놓고 한 문장을 반복하는 주문 같았다.

몇 번 듣지 않았는데도 입안에서 맴돌았다.

죽음과 춤이라는 두 단어가 붙은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비극도 희극도 아니었다.

가볍지만 무겁고, 무겁지만 또 이상하게 즐겁다.

이런 모순된 감정은 가가 음악이 줄 수 있는 가장 특이한 선물 중 하나다.




예전의 그녀는 폭발적으로 노래했다.

목청을 찢듯이 내지르고 무대 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힘을 빼고 낮게 읊조린다.

그런데 바로 그 절제가 더 큰 긴장을 만든다.

칼을 휘두르는 대신, 칼집에 넣어 둔 채 존재만으로 위협하는 것처럼.

과거의 불꽃이 있었다면 지금은 잔불 속에서 피어나는 은근한 열기가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서만은 아니다.

음악 자체가 달라졌다.

세상을 향해 외치는 대신, 자신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것.

'The Dead Dance'는 그런 내적 전환의 증거처럼 들린다.




노래를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The Dead Dance'는 단순한 댄스곡이 아니다.

겉으로는 간결하고 반복적인 멜로디, 누구라도 흥얼거릴 수 있는 후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은근한 긴장이 숨어 있다.

구절은 짧고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묘한 집요함이 생긴다.

귀가 지칠 만한 순간에도 이상하게 멈추지 않는다.

마치 무덤 앞에서 이어지는 망자의 춤처럼 한 발 물러설 수 없게 한다.




보컬의 톤은 낮고 억제되어 있다.

절규하지 않고 목청을 돋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차분함이 오히려 더 무섭다.

마치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태도처럼.

한 구절 한 구절이 크게 울리지 않아도 곡 전체는 한꺼번에 압박을 준다.

듣는 사람이 마음을 놓을 틈이 없다.

이전의 가가가 우리를 앞에서 밀어붙였다면 이번에는 뒤에서 끊임없이 따라붙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붙잡는 듯한 느낌이다.




뮤직비디오는 이 노래의 정서를 완벽히 살리지 못한다.

팀 버튼 특유의 기괴한 상상력이 더 크게 터져 나오기를 바랐는데 영상은 오히려 단정하다.

불길한 그림자와 불완전한 빛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것은 끝내 안전한 선을 넘지 않는다.

기대했던 낯선 충격 대신, 다듬어진 그림책 같은 기괴함이 자리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보니 이 절제가 노래와 닮아 있었다.




춤은 간단하다.

몇 가지 동작만 반복된다.

누군가 따라 추라고 해도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노래와 안무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긴다.

리듬은 더 크게 흔들라고 속삭이는데 안무는 끝내 그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 틈 때문에 화면을 보는 눈과 귀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 불일치가 잔상을 남긴다.

완벽한 합보다 어설픈 어긋남이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앨범 Mayhem을 떠올려 보면 전체적으로는 어둡고 극적인 정서가 강하다.

'ZombieBoy', 'Shadow of a Man', 'Kill for Love' 같은 곡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공포라기보다는 인간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가깝다.

사랑의 뒤편에 있는 집착,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상처, 살아 있음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

가가는 이번 앨범에서 이런 그림자들을 음악으로 끌어올렸다.




그 안에서 'The Dead Dance'가 하는 일은 분명하다.

제목부터 ‘죽음과 춤’을 나란히 놓는다.

죽음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고 춤은 가장 생생한 몸짓이다.

그 두 가지를 결합한다는 건, 삶과 죽음을 동시에 포용하겠다는 선언이다.

사실 가가는 오래전부터 이런 이미지를 즐겨 다뤄왔다.

'Dance in the Dark'에서 이미 춤은 어둠과 결합했었고, 'Marry the Night'에서는 고통을 껴안은 채 춤추는 장면을 만들었다.

그런 흐름을 이어받아 이번 곡은 더욱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죽음조차 춤추며 맞이하겠다고.




그러나 흥미로운 건 이 곡이 정식 트랙으로 처음부터 앨범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뒤늦게 덧붙여진 형태로 들어온 만큼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 ‘낯선 진입’ 덕분에 앨범의 이미지는 확장된다.

기존의 무거움이 반복되는 걸 막아주고 살짝 다른 각도의 어둠을 던져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앨범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가가의 커리어를 놓고 보아도 이런 곡은 특별하다.

그녀는 늘 실험과 대중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Born This Way의 과격한 메시지와 Joanne의 소박한 시도, ARTPOP의 난해한 실험과 A Star Is Born의 주류 친화적인 발라드 사이에서 그녀는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이번 곡 역시 그렇다.

한편으로는 어둡고 실험적인 이미지 속에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하고 따라 하기 쉬운 후렴을 갖고 있다.

바로 그 균형이 가가다움을 증명한다.




'The Dead Dance'의 뮤직비디오는 처음엔 약간 어색하다.

팀 버튼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튼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기괴한 인형극, 음산한 동화, 익숙하지만 낯선 공포 같은 장면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영상은 그런 과잉 대신 한 발 물러나 있었다.

불길한 그림자와 삐뚤어진 웃음이 분명 등장하지만 모두 정제되어 있었다.

칼날 같은 기괴함이 아니라 둥글게 다듬어진 장식품 같은 기괴함.

그래서 처음에는 놀람보다 아쉬움이 앞섰다.




하지만 영상을 다시 보니 이 절제는 곡과 닮아 있었다.

노래가 과격하게 울부짖지 않듯 영상도 끝내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은근히 스며든다.

조명 하나가 켜졌다 꺼지는 순간, 안무 중 잠깐의 정지, 흔들리는 배경의 실루엣.

이런 작은 장면들이 곡의 반복적 리듬과 맞물려 뇌리에 남는다.

가가의 영상은 언제나 몇 개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Bad Romance'의 흰 방, 'Alejandro'의 십자가, 'Applause'의 화려한 분장처럼.

이번에는 춤추다 얼어붙은 표정, 검은 빛 속에서 번지는 불안이 그 역할을 한다.




안무는 의도적으로 단순하다.

몇 가지 동작이 반복될 뿐이다.

따라 하기 쉬운 그 단순함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그러나 리듬은 훨씬 더 많은 걸 요구한다.

음악은 크게 흔들고 몸을 던지라고 하는데 동작은 그 요구를 절제한다.

그래서 귀와 눈이 살짝 어긋난다.

이상하게도 그 틈이 오래 남는다.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순간보다 어딘가 삐끗한 순간이 더 진하게 기억되는 법이다.




결국 이 뮤직비디오는 ‘부족함의 미학’을 보여준다.

만약 더 화려하고 더 과감했다면 우리는 잠깐 놀라고 금세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절제는 불만을 남긴다.

그리고 그 불만이 여운이 된다.

노래가 머릿속에 맴도는 동안 영상의 몇 장면이 따라온다.

그 작은 잔상들이 모여 곡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The Dead Dance'는 내게 모순된 감정을 남겼다.

치명적인 충격을 주는 곡은 아니었다.

첫 순간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단순하다고 여겼던 멜로디가 집요하게 반복되며 나를 붙잡았다.

중독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단순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이 노래의 힘이다.




Mayhem이라는 앨범의 서사 속에서 이 곡은 약간의 불협화음을 만들면서도 이상하게 자리를 잡는다.

원래부터 있었던 곡은 아니지만 나중에 끼워 넣은 듯한 어색함이 오히려 앨범을 확장시킨다.

기존의 무거운 톤이 조금 느슨해지고, 또 다른 방향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죽음과 춤을 함께 부른다는 발상은 결국 앨범 전체가 가진 어둠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조금 더 대중적이고 쉽게 다가온다.

그 이중성이 흥미롭다.




뮤직비디오는 완벽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기대했던 폭발은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절제와 부족함이 여운을 만들었다.

사람의 기억은 늘 빈자리를 향해 간다.

가득 채워진 것보다 덜 채워진 것이 오래 남는다. 그

래서 이 영상은 불만족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떠오른다.

조명과 그림자, 단순한 안무, 멈춰 있는 듯한 시선.

그 잔상들이 곡의 멜로디와 얽혀 머릿속에서 계속 살아난다.




나는 이 곡을 걸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패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묘하게 어정쩡한, 그러나 분명한 힘을 가진 곡이다.

음악이란 꼭 완벽해야만 오래 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흠이 있는 작품이 더 오래 마음을 흔든다.

'The Dead Dance'는 바로 그런 곡이다.

빈틈이 많아서, 그래서 더 오래 떠오르는 노래.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 속에 붙박이는 노래.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노래를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대단한 혁신은 아니었지만 하루의 생각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곡이 끝난 뒤에도 귓가에 맴돌고 장면이 사라진 뒤에도 눈앞에서 춤이 이어졌다.

음악은 결국 이렇게 사람의 하루를 바꿔놓는다.

'The Dead Dance'는 그 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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