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빈야드 찬양 3

분별로 지키는 자유

by 참지않긔

예배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공적 질서의 경계, 은사의 사용과 남용의 위험, 체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영향이 커질수록 자주 돌아온다.

그 물음 앞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기준이다.

성경, 사랑, 질서, 유익. 네 단어는 표어가 아니라 판단의 선이다.

무엇을 공예배의 자리에서 허용하고 무엇을 삼갈지, 어떤 표현이 어디까지가 적절한지, 은사가 언제 신뢰를 얻고 언제 신뢰를 잃는지, 그 선들이 경계를 그린다.




구체적 사건들은 이 선의 의미를 더 또렷하게 했다.

어떤 지역의 모임에서는 강한 현상이 공예배의 흐름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다른 곳에서는 공적 발화가 개인 지시로 비껴가려 했다.

문제는 강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과 집중을 가리는 지점이었다.

그럴 때 내려진 선택은 물러섬이었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현상이 목적이 되지 않도록 지키려는 태도였다.

공예배는 개인의 체험을 제한 없이 표현하는 무대가 아니라 회중 전체가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서로 돕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준을 분명히 세워 두면 신비는 자리를 잃지 않고 머문다.

반대로 기준이 흐려지면 신비는 금세 피로해진다.




학문과 목회 현장 사이의 긴장도 있었다.

한때 표적과 기사, 교회 성장을 다룬 강의가 논쟁 속에 중지된 일은 퇴출의 표지가 아니었다.

주제가 더 넓은 공론장으로 이동하는 계기였다.

이후 현장은 예배의 안전과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분별의 언어를 정비했다.

공개된 방언을 공적 메시지로 다루려면 통역과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원칙, 개인의 비밀을 폭로하거나 구체적 결정을 강요하는 예언을 공예배에서 금한다는 원칙, 공적 발화는 짧고 분명하게 하고 곧바로 공동 고백으로 회수한다는 원칙이 그때 단단히 자리 잡았다.

방언은 많은 은사 중 하나이며 성령세례의 필수 표지로 강요되지 않는다는 점도 반복해 확인되었다.

기준이 선명해질수록 오해는 줄고, 줄어든 오해만큼 자유는 오래 간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도 이러한 분별이 배어 있다.

매끈하게 닦아 낸 스튜디오 사운드를 목표로 삼기보다 예배 현장의 호흡을 가능한 범위에서 남기려 한다.

박수 소리, 여백의 공기, 회중의 응답 같은 요소를 필요 이상으로 지우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예배가 공연이 아니라는 신학적 선택이 파일의 질감에까지 반영된 결과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무대를 떠올리게 하기보다 함께 부르던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기억은 곡을 예배로 되돌린다.




영향은 다양한 대륙과 교단을 건너 확산되었다.

많은 교회가 2인칭 가사, 낮은 키, 간결한 후렴, 곡 사이의 여백, 설교 전후의 조용한 기도 시간을 받아들였다.

전통 예전 교회들은 고정된 순서 안에 짧은 현재형 고백을 삽입했고, 현대 예배를 드리던 교회들은 절기에 맞춘 전통 찬송을 함께 불렀다.

서로의 길이 서로를 보완했다.




장점과 위험은 함께 보인다.

장점은 회중이 노래의 주인이 된다는 점, 낯선 이도 쉽게 합류할 수 있다는 점, 하나님께 직접 말 건네는 언어가 예배를 설명에서 대화로 돌려놓는다는 점이다.

위험은 단순함이 내용의 깊이를 잃을 수 있다는 점, 친밀함이 경외를 흐릴 수 있다는 점, 은사의 사용이 경계를 넘어설 위험을 늘 안고 있다는 점이다.

빈야드는 이 긴장을 피하지 않고 인정했다.

인정한 뒤에는 기준을 붙들었다.

성경, 사랑, 질서, 유익. 네 단어는 유행이 아니므로 유행이 바뀌어도 기준은 그대로 남는다.

기준이 남아 있어야 노래가 오래 남고 노래가 오래 남아야 예배의 언어가 다음 세대로 건너간다.




오늘의 사역은 현장과 온라인, 소규모와 대규모,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인정한다.

어디서든 같은 기준을 놓되 표현은 바꾼다.

화면으로 예배를 드릴 때는 자막을 선명하게, 안내를 짧게, 말의 속도를 낮춰 누구나 따라올 수 있게 한다.

현장에서는 접근성과 안전을 챙긴다.

휠체어 동선, 유아 동반, 청각·시각 지원은 곁가지가 아니라 모두가 참여한다는 핵심의 실천이다.

작은 배려들이 신학을 현실로 바꾼다.




앞으로의 길을 묻는다면 대답은 다시 단순해진다.

하나님께 직접 말을 건네는 고백,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낮은 선율, 사랑과 질서가 지켜 주는 자유.

이 세 가지를 놓치지 않는 한, 세부 양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져도 괜찮다.

어떤 전통은 더 느리고 조용할 수 있고, 어떤 전통은 조금 더 빠르고 밝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백이 지금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고백을 서로의 입술로 나누는 일이다.

그 한 가지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음을 잇는 가장 튼튼한 줄이다.

빈야드가 남긴 것은 그 줄을 붙드는 법이다.

줄을 붙들면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는다.

흔들림이 잦아들면 사람들은 다시 같은 쪽을 향해 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빈야드 찬양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