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엄마의 고독한 육아일기
“너무 똑똑한데 5차원이에요.”
세 살 무렵 어린이집 선생님이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휘이휘이 자동차 굴리는 남자아이들과
공주옷 차려입고 꽁냥 대며 소꿉놀이 하는 여자아이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클레이로 만든 숫자를 디밀며 같이 놀자는 아이를 친구들이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까?
오감이 다 예민하니 밥은 뱉어내지.
물감놀이며 오감놀인 다 거부하지.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것이 최고인 그곳에서 두 자릿수 덧뺄셈을 암산하는 세 살배기의 총명함은 아무런 힘도 없었다.
똘똘하고 사회성까지 좋은 아이의 엄마가
“선생님이 우리 아이 반장시켰대. “
라는 말에 미소로 답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올라오는 씁쓸함.
‘우리 아이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인싸까지 되길 바라는 엄마라니..‘
그 씁쓸함이 다시 죄책감으로 바뀌면서 밤잠 설쳤던 날도 여러 날이다.
어느덧 네 살이 되고
그저 숫자에만 꽂혀있던 아이가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어린이집 선생님인데요. 아이한테 자동차놀이를 좀 가르치는 건 어떠세요? 초록이가 친구들이랑 놀고는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네요. 친구들끼리도 이미 무리가 형성이 돼서 방해가 되는지 초록이를 좀 피하네요. “
‘4살짜리 아이한테 가르친다고 취향이 바뀔까?
공룡에 꽂힌 아이에게 인형 갖고 노는 법을 가르칠리도 없고 가르친다고 바뀌지도 않을 텐데 왜 내 아이에게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4살짜리 아이에게 다른 친구들과 맞춰 노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은 참 가혹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그것을 ‘사회성 부족’으로 표현해 버리는 어른의 생각에 쉬이 납득이 되지도 않았다.
영유아검진 때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가
모니터에 있는 글자들을 척척 읽어내는 것을 보고
의사가 월반을 권유한 적이 있다.
“빠른 아이들이 사회성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 대화할 상대가 부족할 뿐이죠.”
고조된 감정을 추스르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자.‘
어린이집 적응에 도움이 될만한 초록이의 특징을 세장분량의 편지에 담아 선생님께 읽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블록으로 번호가 달린 주차장과 자동차를 만들어 아이의 관심을 끌고 역할놀이 연습도 시켰다.
그렇게 내 아이의 첫 사회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이의 외로움을 편히 다른 사람에게 터놓기도 어려웠다.
“역시 똑똑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구나. “
라는 말이 듣기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잘 해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무작정 혼낸다고 듣는 아이도 아니었지만
나직한 말투로 조곤조곤 설득하면 총기 어린 눈빛이 더 밝아지며 “네에-”하고 대답하는 아이였다.
대답도 똑 부러졌지만 납득이 가면 행동으로 옮기는 단단한 네 살이었다.
8살이 된 지금 모든 것이 속시원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미션을 던져준다.
그러나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좋은 어른으로 자랄 것이란 확신이 있기에
한고비, 두고비 미션을 깨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