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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Oct 29. 2024

남편이 만든 탕수육은 처음이야


다 귀찮았다. 청소도 요리도. 전업주부가 당연하게 해야 할 집안일이지만 우울한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중 요리는 특히 하기가 힘들다. 내 입 하나에 들어가는 음식 하기도 어려운데 네 식구의 한 끼 식사를 책임져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기운 빠지고 지치는 일이다.

배달 배달 그리고 가끔 요리.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또 요리를 하지만 요리를 하고 난 후에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를 보면 또다시 기운이 빠진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치우기까지 사람이 한 끼 먹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싶다.


그런 나를 대신해 남편이 나섰다. 흑백요리사가 나오기 이전부터 남편은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유튜브로 여러 레시피를 찾아본다던지 식당리뷰를 본다던지. 그랬던 남편이 드디어 요리를 하겠다며 고기 한 덩어리를 사 왔다. 무려 1kg이나.

탕수육을 해주겠다며 주방에 선 남편. 한 끼는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긴 했지만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나의 걱정과 못 믿음의 눈빛에도 꿋꿋하게 칼을 들고 고기를 써는 남편. 어디 한번 어떻게 하나 보자.

남편은 전분물도 만들고 탕수육소스도 만들어 놓고 고기를 튀기기 시작했다. 사방에 튀는 기름을 째려보니 본인이 치우겠다는 남편. 사실 음식만 맛있다면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긴 하다.




잘 튀겨진 고기와 소스를 볶아 만든 탕수육. 드디어 완성이다. 탕수육은 바삭바삭 새콤달콤 상당히 맛있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만든 탕수육이 최고라며 앞으로 탕수육은 사 먹지 말고 아빠가 만들어달라고 했다. 나는 요리를 안 해서 좋고, 남편은 그동안 만들어보고 싶었던 요리를 해서 좋고, 아이들은 맛있는 탕수육을 먹을 수 있어서 좋고. 1석 3조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고 눈이 땡그래졌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설거지했던 날이다.


얼마 전 아들이 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게 하고. 나는 엄마라고 답했고 아이는 맞다고 했다. 엄마를 사랑하는 커다란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너무나 커다란 사랑이 마음속에서 비집고 질문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또 이렇게 쿵 하고 마음으로 사랑을 받는다. 아들에게. 또 남편에게.

남편이 만든 탕수육은 가족 모두를 웃게 했다. 그날 주방에 서서 요리를 하는 남편의 모습과 탕수육의 맛을 잊지 못한다.  모습 또한 사랑이겠지. 탕수육 또한 사랑이겠지. 아, 나는 이렇게 또 사랑받고 있었구나. 이렇게 맛있는 사랑을 받는구나. 나도 이젠 조금씩 요리를 할 힘이 난다. 사랑을 받고, 행복을 받고, 주방에 서있던 남편처럼 나도 사랑을 만들어야지. 이젠 내가 맛있는 사랑을 만들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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