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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Nov 24. 2024

잘 걸으며 잘 살아내기


아침엔 걷기로 했다. 이젠 운동을 시작해 보라는 의사의 권유에 나는 말 잘 듣는 환자라 바로 실행에 옮긴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하고 난 후 집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운동이 필요할 때 종종 걷긴 했지만 이번엔 본격적으로 걸어볼까 한다. 걷는 건 지루하다. 매번 보는 풍경도 지겹고, 오른발 왼발 두 다리를 번갈아 반복해서 뻗어야 하는 것도 지루하다. 걸을 때마다 항상 이어폰을 끼고 가요를 듣는데 그것도 지겹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엔 클래식 FM을 듣기 시작했다. 클래식 FM은 집에서 종종 듣긴 했지만 요즘 클래식에 소홀했다. 나름 클래식 전공자로서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이 좋아 지겨운 걷기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발밑에 깔린 낙엽을 밞으며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걸음은 그래도 버틸만하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흔히 우울증 환자들이 많이 하는 생각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도 그랬다. 우주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인 내가 왜 살아가는 걸까 하루종일 생각하며 우울 속에 빠지고 빠졌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사는 이유를 내가 존재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존재 자체도 의미가 있고 소중한 거라고.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그걸 지켜낼 의무가 있다고. 그래서 잘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아이의 엄마이고 사람의 아내로 여기 자리에서 행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항상 사랑받고 있으니.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게 내 존재의 이유다.



첫째 아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둘째 아이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악기 하나쯤은 배워두고 성인이 되어서도 취미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인데 아이들이 투정 부리지 않고 잘 배워줘서 고맙다. 집에서 심심할 때면 악기를 가지고 연습도 하고 연주도 해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있어 나의 클래식 인생은 계속 연결된다. 나에서부터 아이들까지.

그리고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다. 내 존재의 이유는 찾지 말고 아이들을 보며 잘 살아가자고. 그저 잘 살아가자고. 나를 바라봐주고, 고사리손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나에게 얼굴을 비비는 아이들을 보며, 오래오래 이렇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이다.


걸으며 듣는 라디오에서는 기타 연주, 성악, 바이올린, 피아노 등  악기가 연주하는 여러 곡들이 흘러나왔다. 이어폰으로 음량을 크게 키워서 듣는 클래식은 정말 아름답고 감동스럽다. 어쩔 땐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오늘도 버티며 걷는다. 걷는 게 지루해도 의사의 말대로 열심히 걸어본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과,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잘 살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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