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많이 없다. 그래서 친구들과 교류도 잘 없는 편이다. 가까이 살지 않는 친구들과 일 년에 몇 번 만날까 말까 하고 전화도 잘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 안 그래도 안부 묻는 인사 말고는 할 말이 없는데, 왠지 더 할 말이 없어 연락을 안 하게 된다. 그만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건 좋은 일이다. 너무 깊은 감정의 골짜기로 들어가지 않은 평평한 내 마음은 이제 조금은 단단해 보인다.
올해 초의 일 년 계획은 무계획이었다. 아무 계획 없이, 어떤 커 다린 일도 없이, 그저 조용히, 평온하게만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바라는 건 많아진다. 우울하지 않았으면, 건강했으면, 이젠 행복해졌으면 하고 말이다. 지금도 그렇다. 올 해가 거의 다 가버린 지금 이 시점에 내가 올해 원하는 점이 생겼다. 바로 행복. 이젠 조용하고 아무 일 없는 한 해보단 더 밝고 기쁘고 행복하길 바라고 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한 사람들의 마음은 거울과도 같아서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의 행복 또한 복사해 함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글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 행복을 느끼기보단 주로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친구가 별로 없는 나에겐 가족들의 영향이 제일 크다. 가족이 괴로워하면 나 또한 괴롭고, 가족이 행복해하면 나 또한 행복하다.
가족 중 가장 영향이 큰 건 남편이다. 언제나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남편. 매 순간 평온한 남편은 언제나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붙들어 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 항상 자기 마음에 솔직한 어린이들이라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언제나 더 크게 울고 더 크게 행복해하는 건 바로 나다.
이른 아침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외투를 입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려는 첫째를 둘째가 막아선다.
"오빠! 엄마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가야지!"
첫째는 획 하고 돌아서서는 헤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나를 꼭 안아준다. 그리고 뽀뽀는 몇 번씩이나. 나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렇게 기쁘게. 행복하게.
올해 말이 되어서야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우울증이 나아져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행복을 느끼며 건강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울로 울면서 시작하는 하루가 아니라 말이다. 내년엔 무계획으로 시작하지 않을 거다. 더 행복해지길, 더 따뜻하길 바라며, 그리고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스스로를 우울 안에 가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올 해가 가기 전에 미리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