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바리 불멍 모임에서 나답지 않은 연말 마무리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 불멍 모임에 나갔다.
나답지 않은 연말이었다.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밤새 가무를 즐겨야 마땅한데, 어쩐지 차분하게 연말을 마무리하고 싶은 너무나도 낯선 욕구가 든 것이다.
'이거 맞아...?'
모임 시작 1시간 전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도 고민을 했다. 그래도 연말인데, 지금이라도 수십 명의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맘껏 가무를 즐길 수 있는 파티의 현장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참, 포틀럭 파티랬지...'
나는 지하철 역 피자 가게에서 새우 피자 한 조각을 포장했다. 연말에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발길이 이미 잔잔바리 불멍 모임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롱패딩 속에 몸을 숨기고 털모자로 완전 무장을 해도 뼈가 시리게 추운 날이었다. 영하 12도의 매서운 추위를 뚫고 도착한 오래된 건물, 낡은 계단을 오르는데 입김이 났다.
문을 열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과 따뜻한 촛불과 고요한 방이 나를 반겼다. 오는 길에 꽁꽁 얼어붙은 몸과 1년 동안 지친 줄도 모르게 지친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눈과 귀를 통해 스며든 포근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순식간에 온 마음이 평온해졌다.
핸드폰을 반납하고 동굴처럼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시끄러운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어둠 속의 대화 컨셉의 모임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앞사람 얼굴도 잘 안 보일 정도로 어둠이 깊은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서로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여섯 명의 낯선 사람들이 가운데에 촛불을 놓고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곳은 어둠이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고 촛불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우리는 얼굴 형태만 간신히 보이는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삭막한 현실에서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법한 주제로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비밀 이야기도 쉽게 튀어나오는 법. 그 순간만큼은 가족보다, 친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불멍 모임에서는 모임 시작 전 익명의 고민 상담소 컨셉으로 각자 하나씩 사연을 접수받았다.
'고민? 음...'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첫 문장조차 써지질 않았다.
그날의 내 사연은 이러했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깨닫기 위해 불멍 모임에 이끌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음... 고민이 없는 것이 고민이랄까요?...
하고 싶은 걸 거진 다 하면서 살고 있는 요즘,
저의 무한 에너지 동력이었던 분노도 결핍도 모두 소멸해 버려서
더 이상 딱히 욕망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근데 그토록 바랐던 이 최적의 밸런스와 평온한 상태를 찾고 나니
삶이 좀 지루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의 스릴을 다시 찾으려면 아무래도
새로운 결핍과 욕망을 찾아야 할까요?
그렇다. 나는 정말로 고민이 없었다.
세상에. 내 입으로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이라는 복에 겨운 말을 내뱉는 날이 오다니.
이런 감격스러운 순간이 오다니.
이따금씩 찾아오는 정신병 전조증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지독하게 발버둥 친 한 해였다. 여기저기서 짓밟힌 나를 똑바로 세우기 위해 별짓을 다 해 본 한 해였다. 그런데 불멍 모임 덕분에 앞만 보고 내달리던 폭주를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나는 '미션 컴플릿'이었다.
나는 더 이상 회사를 떠올려도 화가 나지 않았다. 10년 동안 끔찍하게 괴로웠던 혼자만의 지옥, 정확히 말하자면 그 지옥에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썩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결핍도 느끼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공부가 너무 재밌었다. 석사를 밟으면서 회사에서는 제 기능을 못하는 두뇌가 팽팽 돌아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회사 점심시간에 약속을 몽땅 없애고 대충 끼니를 때우며 매일 혼자 과제를 하는데도 그게 행복했다. 본업보다 100배는 더 재밌는 놀이를 그저 즐겼을 뿐인데 성적우수장학금이 나왔다. 고민을 굳이 만들어내자면, 졸업 논문으로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다. 억눌린 에너지와 끼를 발산하기 위해 미친 듯이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했더니 정신병이 싹 나았다. 뮤지컬, 축가, 버스킹, 스윙댄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뛸 수 있는 공연은 다 뛰며 나의 쓸모를 다했다. 밤새 춤추다 아침에 귀가하는 날이 20대 때보다 더 많았을 정도로 완전히 본성에 충실하게 살았더니,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나는 더 이상 쳇바퀴 같은 삶이 답답하지도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쏘다니며 역마를 해소했더니 답답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하루 전에 비행기표를 끊고 미친 척 훌쩍 남미여행을 다녀오고, 친구를 본다는 핑계로 도쿄에 마실도 다녀오고, 무리한 출장 일정을 강행하여 캐나다와 미국의 공기까지 마시고 왔다. 이 정도 싸돌아 다니니 좀 살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최적의 밸런스를, 그토록 원했던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찾았다. 그런데 불멍 모임에서 생뚱맞은 생각이 튀어나와 버렸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줄 알았던 그 상태에 이르고 나니, 인생의 스릴을 위해 이 균형을 깰만한 새로운 결핍과 욕망을 찾고 싶다는 음흉한 마음이 고개를 든 것이다.
지금 이대로 평온한 길을 걷기
vs.
새로운 결핍과 욕망을 찾아 또 길을 잃기
내년의 나는 과연 어떤 노선을 택하게 될 것인가?
불멍 모임에서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이라는 나를 부러워하며 사람들이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요즘은 회사에서 이것도 고민이고, 친구관계에서 저것도 고민이고...'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저... 고민이 없는 게 아니었어요...!!!"
나도 그들과 비슷한 류의 고민을 갖고 있었다. 다만, 내가 더 이상 그것을 고민으로 치부하지 않을 뿐이었다. 올해 내가 이룬 괄목할만한 성장이라면, 모든 고민에 만사 초연해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해탈의 경지일까?
요즘 내가 자주 내뱉는 말이 떠올랐다.
'고민할 필요 없다... 어차피 모든 것은 운명책에 새겨져 있다...'
운명론자로 빙의했더니 삶이 참 편하다. 조금씩 초월자적인 삶의 태도를 배워가는 중인가 보다.
모임장님이 1년 만에 모임에 나온 나에게 잊지 않고 다시 찾아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나는 모임장님과 꽤나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6년 전 부산에서 지방근무를 하던 시절 어느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났는데, 1년 전 이 불멍 모임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것이다. 6년 전의 나와,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모두 알고 있는 낯설지만 특별한 사람에게, 지금까지 이 모임을 계속 열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2025년 가장 추웠던 겨울날, 익숙한 어둠의 공간에서 올해의 나를 찾고 간다. 6년 전 어둠 속에는 완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내가 있었고, 1년 전 어둠 속에는 이제 막 표지판을 찾은 내가 있었고, 오늘의 어둠 속에는 새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내가 있다.
어쩌면 이 잔잔바리 불명 모임이야말로, 비로소 평온에 이른 올해의 나에게는 가장 '나다운' 연말 마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