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12년 차 다시 시작된 나의 시집살이의 종말이 왔다. 겉으로는 별일 없는 것 같았지만 내 마음이 아니었나 보다. 드디어 스트레스가 신체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전화 소리만 들어도, 목소리만 들려도 두려움이 생긴다. 가슴이 요동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되고서야 나는 안 보게 되었다.
이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난 결혼 11년만에 암게 걸렸다. 1년간 치료를 하며 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 처음에는 살이 쪄서, 술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암에 걸려 치료 중임에도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녀와 마주치며 난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녀 때문이 9할이다. 결혼전 부터 시작된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깨달았다.
그녀와의 마지막이 된 그날 나는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마비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를 얘기하자면 하찮아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난 힘든 항암을 끝내고 표적항암을 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처음 회사를 다닐때는 수요일쯤부터 너무 힘이 들고 피곤했다.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싶었지만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나의 체력은 바닥이었다. 좋다가도 갑자기 안 좋아지고 힘이 들었다.
토요일인 어린이날부터 월요일까지의 연휴에 우리 네식구는 밤에 서울구경을 갔다. 내가 좀 체력이 괜찮을 때 신랑은 어디를 데려가려고 했다. 재밌게 구경하고 집에 오니 새벽 3시였다. 늦게까지 잠을 잤지만 피곤했다.
평일에 어버이날이면 항상 전 주말에 방문했었다. 연휴가 지나면 이틀 후 평일에 어버이날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날 연휴에 그녀를 오시라고 하자고 내가 먼저 얘기 했다. 함께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고 했다. 반찬도 새로 안 해도 될 거 같았다. 그래서 오시는 걸로 신랑과 얘기했다. 그리고 늦잠을 잔 일요일 오후 늦게 그녀를 신랑이 모시고 왔다.
보자마자 하는말 ....
"여기도 아프고 이쪽도 밤새 아팠어"
항상 인사가 아프다로 시작한다.
그렇게 가져온 삼겹살을 먹기 위해 저녁준비를 했다. 삼겹살을 먹으니 쌈과 반찬 한두 개만 놓았다. 그렇게 먹고 나서 아이들과 다 함께 앉아 TV를 보았다. 그녀는 항상 TV를 틀어 놓아도 옆에 있는 나한테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TV를 집중해서 볼 수 없다. 했던 얘기를 수십 번 처음 하듯이 하는데 나는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그렇게 있다가 서랍장 작은 게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중고에서 보며 아들한테 어떠냐고 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오래된 서랍장이었다. 별로였다. 그래서 아들이 그건 별로라고 했다. 중고를 가져오려면 아들의 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들한테 물어봤다. 그녀의 마음속에 속상함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음날 오전이 되었다. 항상 아침은 아점으로 10시쯤 먹었고 난 여러 반찬을 꺼내고 그녀가 가져온 반찬도 올려놓았다. 반찬만 7첩 반상이었다. 그리고 고등어를 노릇노릇 구웠다. 하지만 그녀는 생선도 안 먹고 자기가 가져온 물김치만 먹었다. 그때도 잘 몰랐다. 고등어를 못 먹는다는 사실을.....
그렇게 내가 설거지를 하고 나니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방에 새로 산 책상을 보게 된 그녀... 거실 책상을 함께 쓰다가 드디어 고학년이 되어 사주게 된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좀 앉으려 하니 집에만 있기 싫다며 그녀가 나가자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별로 안 가고 싶어 했다. 맨날 가는 다이소를 또 가자고 하니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큰둥했다. 그때부터였다.
"이제 다 컸다고 할머니 하고도 안 놀아주네!! " 라며 화가 났다.
내가 신랑한테 눈치를 줬다. 그녀를 데리고 갔다 오라고.... 둘이 나가면서도 뭐라 뭐라 한다. 그렇게 신랑이랑 둘이 나가고 아이들은 키즈카페에 가고 싶다 해서 데려다주었다.
집에 다시 와서 집 정리를 하고 있다가 나는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그녀도 이쯤 오겠지 생각해서 점심은 나가서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왜냐하면 항상 그렇게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안 통하나 보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왔더니 벌써 와서 아들과 전을 간단히 부쳐 먹고 있었다.
"전을 부쳐 드셨네요?"
"그래 배고파서 먹었다. 밥때가 됐으면 밥을 차릴 생각을 해야지 꼭 이렇게 말이 나오게 하냐? "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녀의 폭발.... 아들이좋아하는 구석자리 베란다안쪽 1인용 소파에 앉아 있으니 다시 시작되었다.
"아들 왜 거기 앉아 있어!! 꼭 마누라 눈치 보는 것처럼!! "
그 말에 난 참 어이가 없었다. 바로 앞의 나 들으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그러고는 아들이 집에 데려다준다며 화를 내면서 갈 준비를 시작했다.
집에 데려다준다고 나간 신랑은 두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그녀는 20분 거리에 산다. 하지만 신랑이 일찍 안 와도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집에 데려다주고만 온 적이 없으니까. 일단 집으로 들어가야 하고 또 한참을 얘기를 하던지 있다가 가야 한다. 신랑이 그러고도 왔어야 하는데 안 온다.
둘째의 핸드폰이 울린다. 그녀다.
"아빠 왔니? "
"아니요"
목소리에서 아이들한테까지 기분이 나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고는 곧장 나에게 전화가 왔다.
얘기하면 길지만 일단 아들한테 차에서 한 얘기가 화근이 되었다.
'내가 중고등학교 가서 책상 사주라고 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둘째까지 책상이 왜 지금 필요하냐!! 엄마는 서랍장 하나 중고로 산다는데 그것도 싫어하면서 애들은 새 책상을 사줬냐 "
여기서 아들도 화가 났나고 한다. 처음으로 엄마한테 소리치며 그만 좀 하라고 다그쳤다. 그렇게 집에 내려 주고는 가버렸다고 한다.
그 얘기를 시작으로 나한테 다시 시작된 잔소리.....
" 내가 애들 중고등학교 가서 책상 사주라고 했잖아 그래 안 그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하나도 없고 먹을게 하나도 없어서 물김치만 해서 먹었다. 그리고 밥때 되면 말 안 해도 점심을 차려야지!! 3시가 지나도록 밥 할 생각도 안 하고..... 거지취급하냐! "
"죄송해요. 고등어 못 드시는 줄 몰랐어요. "
"넌 왜 맨날 죄송할 짓을 해! "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도 보지만 마음에 많은 말들이 꽂힌다.
끝도 없이 나오는 얘기들이 참 기가 찬다. 아이들 책상 사주는 것까지 보고해야 하는 건가싶다. 맨날 아점 먹더니 왜 이번에는 세끼 차리라고 하는 건지. 그녀는 항상 기분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 그래서 난 맞출 수가 없다. 아들도 처음으로 엄마한테 폭발해 버렸다. 그러고는 집에도 오지 않고 있었다.
어두워진 저녁에 신랑이 왔다. 10여 년을 이렇게 살아오다 보니 둘 다 더 이상 말이 없어져버렸다. 그리고 그날까지는 나도 또 있는 일상이구나 생각했다. 매번 명절이나 연휴나 만나면 이렇게 된다. 이번 연휴도 결국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