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이었던 어버이날에는 항상 그전 주말에 만났다. 만나면 무조건 1박 2일 코스다. 우리 집이 됐든 시부모집이 됐든..... 숨 막힌다. 그리고 친정 엄마는 평일날 저녁을 먹었다.
매번 어버이날은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기준이 없다.
자기 기분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주말에 그녀를 불렀던 나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자기를 거지 취급한다며 다그쳤고 난 사과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 어버이날이 되었다.
난 표적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녀와서 친정엄마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식사 후 아버님부터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은 항상 짧게 말씀하시고 끊으신다. 지금 일 년 전 어머님집에 계시다가 나와서 큰아들 집에 계신다.
그리고 어머님한테 전화를 했다. 주말에 한소리 듣고 이틀만이다. 아마도 또 한소리 하겠지.....라는 생각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전화를 했다. 어버이날이니까.... 항상 해오던 것처럼...
신호는 가는데 안 받는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면 전화를 안 받는다. 그리고 가끔 카톡에서 차단도 한다.
신혼 초에는 받을 때까지 여러 번 전화도 했지만 이젠 한번 해서 안 받으면 나도 더 이상 안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전화 하지 않았다.
저녁쯤 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잠금화면에 떠있는 것만 읽어 보았다.
'너는 어버이날은 중요하지 않고 어린이날만 중요해? 네가 성의만 있으면 회사 끝나고도 왔다가 가겠다. 꼭 남편이 와야 돼?'
문자를 보는 순간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다른 사람한테 화가 났는데 항상 나한테 푼다. 내가 감정쓰레기통이었다는 걸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들한테 화가 난 걸 시작으로 나에게 꼬투리를 잡아서 화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벌써 아들한테 전화로 한소리를 하고 있었다. 난 핸드폰을 접고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갔다. 아들은 전화로 끊임없이 듣고 있다.
주말에 사과 한걸로도 성이 안 찼다. 그래서 그녀는 어버이날에 내가 찾아와서 또 사과를 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어버이날 대신 주말에 부른 나의 과오인가 싶다.
두 시간을 밖에 있다가 들어왔다.
신랑은 전화를 끊은 상태였다. 그리고는 나한테 다가와 얘기한다.
" 나도 너랑 싸우자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 오늘 전화했었다며? "
"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더라 "
" 그냥 사과해 "
" 내가 왜 사과해? 주말에 사과했어. 내가 뭘 사과하지?"
이제 더 이상 사과할 일도 아닌 일에 사과하기 싫다.
그렇게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들한테 시켜서 나보고 사과전화하라고 한 것 같았다. 남편은 그냥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을 뿐인듯하다. 내가 또 한소리를 한 시간 들으며 '죄송합니다' 하고 끝내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때 신랑한테 전화가 온다.
" 무슨 얘기를 둘이서 길게 하고 있어!! "
다시 시작된 격앙된 목소리가 너무 싫다. 그리고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데 핸드폰 너머로 다 들렸다.
그 순간부터였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6년 전 집으로 쫓아와 나의 멱살을 잡았을 때가 생각이 났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당장 쫓아올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여기 있기 싫어 무서워 엄마집에 갈래..."
나도 모르게 덜덜 떨며 대충 가방에 넣을 옷을 찾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에도 신랑은 전화를 붙잡고 듣고 있다. 끊임없는 잔소리를.... 그러다가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금 상태가 안 좋아"
"무슨 상태!!! 내가 언제 시집살이를 시켰다고!!"
다시 핸드폰 너머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도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난 그때 나만 보였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만....
울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그냥 뛰쳐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난 덜덜 떨었다.
신랑이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가지 말라고 한다.
" 싫어.... 여기 있기 싫어.... 엄마한테 갈 거야."
" 그래 그럼 장모님 집에 가있어"
나는 차에 타는 순간 쌍욕이 터져 나오면서 소리치고 싶어졌다.
씨발!!!! 씨발!!!! 씨발!!!!
난 욕을 안 하지만 이때만큼은 욕이 나왔다.
울면서 난 바로 친정엄마 집으로 갔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울면서 들어갔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엄마"를 찾으며 들어갔다.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 엄마....
대충 설명을 하고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엄마집에 오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이 할머니한테로 전화를 했다. 울면서 자기도 할머니집에 가고 싶다며.... 신랑은 아이들을 친정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갔다. 오자마자 아이들이 운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린다. 그녀다. 받지 않았다.
그리고는 좀 있다 문자가 울렸다. 보지 않았다.
그때부터다. 손과 발이 저린 듯, 쥐가 난 듯, 전기가 오르는 듯했다. 팔을 주물러 봤다. 그런데 손끝, 발끝에서 시작된 느낌이 점점 몸을 타고 올라온다. 처음 느껴본다. 잠깐 저린 건가 싶었는데 뭔가 만질 수도 없을 만큼 찌릿찌릿했다. 나중에는 얼굴까지 왔다. 난 호흡을 크게 천천히 쉬어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과 엄마가 나의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울고 엄마도 울었다.
그 순간 손가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굴에도 마비 증상이 느껴졌다.
" 아빠 다시 오라 그래! "
" 어떻게!! " 하며 엄마가 운다. 모두 당황했다. 나도 당황했다.
좀 있다 신랑이 다시 왔다. 응급실에 가야 했다. 그래서 난 팔을 심하게 흔들며 차에 올라타고 응급실에 갔다. 차 안에서도 난 호흡이 쉽지가 않았다. 크게 숨을 쉬어 보지만 마비가 오고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있을 때에도 그녀의 무차별적 전화는 아들에게 계속되었다. 바로 끊으면 다시 또 온다.
응급실에 온 나는 각종 검사를 하며 새벽까지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신랑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더니 한숨을 쉰다.
"아 미치겠다. 엄마가 쓰러진 거 같아. 큰아들도 전화를 안 받고 큰며느리도 안 받는대. 나랑 통화하다가 끊어졌는데 다시 안 받아."
일 년 전 큰아들 내외가 연을 끊은 상태였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 가봐 자기 엄마잖아. 엄마 여기로 데려다주고 자기 가봐. "
신랑은 친정엄마를 여기에 데려다주고는 시댁으로 갔다. 근데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주 천천히 집에서 옷까지 갈아입고는 간 듯했다.
엄마가 와서 옆에서 간호했다. 점점 숨 쉬는 게 편해지고는 마비 증상도 조금씩 사라졌다.
한두 시간 후 신랑이 다시 왔다. 가면서 119 부르려 했는데 가보니까 괜찮아져서 다시 왔다고 한다. 진짜 아픈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여러 가지 검사를 다 하고 결과 듣고는 다시 친정엄마 집으로 왔다. 그리고 한숨 자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난 그녀를 다 차단시켰다. 더 이상은 견딜 수도 버틸 수도 없다. 그녀 목소리만 들어도 벨소리만 울려도 내 몸이 반응한다. 언제 올지 모를 전화벨에 두렵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