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난 결국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다. 새벽에 친정엄마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회사에도 못 간다고 얘기했다.
전날 내가 그녀의 전화를 안 받았을 때 그녀로부터 문자가 왔었는데 몰랐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화면에 떠있던 문자 앞부분만 보았다고 했다. 추운데 어디냐며 걱정하는 것 같다고 했다. 궁금해졌다.
그래서 결국 아침 문자를 열어 보았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쌀쌀한데 집에 들어가 .... 오늘은 너가 잘못한 거야 다음부터 그러지 마. '
그녀는 내가 이지경이 되어도 결국 내가 잘못했다고 못 박아 버렸다.
더 이상 문자도 전화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언제 또 울릴 지모를 불안에 떨기도 싫었다. 난 차단버튼을 눌렀다.
그 이후 나는 두통을 달게 되었고, 머리가 지끈거려 혈압을 쟤보면 매번 140에서 150이 나왔다.
그날 응급실에서는 160이 나왔었다. 혈관도 모두 숨어 아무리 바늘을 찔러도 도저히 피를 뽑을 수 없어 결국 발에도 찔러보았지만 발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름 항암 하면서 회복하고 있던 나의 몸과 마음이 무너져 버렸다. 무기력해져 버린 것이다.
매일 공부하듯 보던 유튜브도 듣기 싫다.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려고 한 운동도 하기 싫다. 출근할 때는 차에서 계속 눈물이 난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클래식만 듣는데 그날 이후 매일 듣는다. 그리고 운다.
살이 갑자기 3주 만에 2kg 넘게 빠져 버렸다.
그 일이 있는지 한 달이 더 지나 결국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9년 전 방문하고 이번에 두 번째다.
각종 검사를 했다. 설문지도 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우울증 점수가 높게 나왔어요. 자율신경과 부자율신경의 균형도 안 맞네요.... 많이 힘드시구나."
기나긴 얘기를 다 할 수는 없어 최근에 있었던 일 위주로 얘기했다. 눈물이 났다.
선생님은 공감해 주셨다.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결국 우울증 약까지 먹게 되었다.
어버이날 이후 한 달 가까이 되었을 때까지 남편과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지냈지만 차마 그날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이젠 나 대신 자꾸 아이들에게 문자를 하며 '할머니한테 왜 전화 안 하냐, 할머니 문자에 왜 답을 안 하냐'며, 상처받은 아이들의 기분은 생각도 안 하고 답을 하라고 했다. 아직 어린 둘째는 잘 답하고 했지만 첫째는 할머니가 집 앞에 쫓아올까 봐 무섭다 했다. 그리고 싫다고.... 문자에 답하기 싫다고 했다.
결국 그 화는 아들에게 문자와 전화로 서운함을 토해내며 폭발했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에게 전화 달라고도 문자에 왜 답 안 하냐고도 안 했던 그녀였는데 그때그때에 따라 달라지는 그녀이기에 이번에는 기분이 나쁜가 보다.
결국 남편은 아이한테 오는 전화나 문자는 답을 해드려라라고 했지만 첫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한 첫째가 힘들어하길래 아빠한테 솔직하게 네 마음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첫째가 장문의 문자를 아빠에게 보냈고, 남편은 그 문자를 나한테 보내며 '우리 저녁에 우리 얘기 좀 하자'라고 했다.
그날 이후 처음이다. 진지하게 얘기를 하게 된 건.....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다.
"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
남편이 물어봤다.
" 나 살고 싶어.... 안 보고 살고 싶어. "
" 제발 혼자 가! 앞으로도 혼자 가면 되잖아 "
울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모든 말을 쏟아부었다. 나는 이젠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다. 담담히 듣고만 있던 남편도 이야기를 했다.
" 나 정신과 갔었어"
" 난 정신과 예약 되어 있어 "
우린 둘 다 정신과를 간 것이다. 남편도 아들이지만 감당해 오기 힘들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현관문 소리만 들어도 트라우마라고 했다. 집 앞에만 도착하면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도 형도 심지어 와이프까지도......
나도 힘든데 이 사람도 견디기 힘들어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이지경까지 온 것은 착한 아들이 차마 엄마에게 화를 못 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방패가 되어 주지 못하고 결국 아이들에게까지 그 화가 미치게 된 것이다.
한 시간이나 이어진 대화에서 결론은 난 안 본다였다. 처음으로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혼자서 술을 잔뜩 먹고 나타난 신랑은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했다.
" 너희들도 할머니 연락 오는 건 대답해 줘 너네가 먼저 연락하는 건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게 처음으로 남편이 이해를 했다. 하지만 남편은 괴로워했다.
하지만 난 아무리 생각을 다시 해봐도 보고 싶지 않다. 왜 내 인생에서 날 무시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그녀 밖에 없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