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인간성의 고뇌가 명령의 무게를 압도하고
올리버 히르비겔의 영화 <다운폴>(Downfall, 2014)
아돌프 노르던의 그림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퇴각>(1851)
권력의 오만이 불러온 병사들의 죽음
비극 속에서 배우는 희망의 불씨
역사는 권력의 욕망이 낳은 실패의 흔적으로 채워져 있다.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령 시도는 그 자체로 역사가 우리에게 경고했던 비극의 전조였다. 병사들은 인간성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이 지켜야 할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는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을 뻔했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발걸음은 결국 자기를 배반하는 범죄라는 사실이 병사들의 마음을 영원히 흔들었을 것이다.
올리버 히르비겔(Oliver Hirschbiegel)의 영화 <다운폴>은 히틀러의 몰락을 다루며, 권력 남용이 불러온 비극적 결말을 생생히 묘사한다. 철옹성 같던 권력이 붕괴하는 모습은, 권력의 폭주가 결국 자신을 스스로 파멸로 이끈다는 교훈을 전한다. 이 영화는 지도자의 명령에 충실했던 병사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시도 또한 권력의 오만이 얼마나 쉽게 병사들과 시민을 희생시킬 수 있었는지를 알려준 사례였다. 히틀러의 몰락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실패는 그들만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적 비극을 증언하는 장면으로 남는다.
아돌프 노르던(Adolph Northen)의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퇴각>은 권력의 오만이 초래한 대재앙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이다.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속에서 병사들은 극심한 추위와 혼란 속에 후퇴하며, 나폴레옹의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많은 목숨을 희생되었는지를 증언한다.
그들의 행렬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면서, 권력의 몰락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보여주는 잔해로 역사에 남았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시도가 성공했다면, 우리는 이와 유사한 비극의 또 다른 장면을 봤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오만은 언제나 약자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남긴다.
명령의 무게는 병사들의 어깨 위에 올려지며, 그 무게는 <다운폴>의 병사들처럼, 윤석열 정부의 병사들 또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지 못한 채 명령에 따르려 했을 것이다. 노르덴 그림 속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겪은 고통은 단지 추위와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사들은 자신이 희생되는 이유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병사들에게 비슷한 운명을 강요했던 셈이다. 그 결과는 자기를 한없이 부정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권력은 영원할 듯 보이지만, 역사는 결코 이들의 오만을 용서하지 않는다. 히틀러와 나폴레옹의 실패는 권력이 인간적 고뇌를 외면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시도는 이러한 역사의 경고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노르던의 그림 속 병사들은 나폴레옹의 잘못된 선택으로 삶을 송두리째 잃었으며, 그들의 고통은 권력자의 몰락 속에 묻혀버렸다. 우리는 병사와 시민이 겪어야 했을 비극을 상상하며, 권력의 남용이 남긴 잔해 속에서 미래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노르던의 그림은 나폴레옹의 참담한 패배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한계와 고통을 극적으로 담아내어, 병사들이 느꼈을 절망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병사들은 동토 위를 걷는 동안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병사들 역시 시민을 적으로 삼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부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대가는 단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내면의 상처다.
권력은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으로 병사들을 설득하지만, 그 속삭임 속에는 깊은 독이 숨어 있다.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그가 황제라는 이상에 헌신했지만, 결국은 자신을 파괴하는 선택이었다. <다운폴>의 병사들이 그러했듯, 우리의 병사들도 명령과 인간성 사이에서 끝없는 침묵 속에 갇힐 뻔했다. 이는 수동적인 복종이 아니라, 내면의 갈등을 삼키는 무거운 고뇌였다.
그림은 권력의 실패가 개인적 절멸을 넘어, 병사들과 국민 모두를 파괴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폴레옹의 후퇴와 히틀러의 몰락은 권력자가 초래한 비극이 결국 얼마나 광범위한 고통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윤석열의 계엄령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은, 우리가 다시는 그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아야 함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병사들은 명령을 따랐을 뿐이지만, 불가피하지 않았던 상황을 인지한 것이다.
권력은 스스로가 정의의 화신이라 포장하지만, 그 그림자는 가장 취약한 이들의 고통 위에 드리워진다. 그림 속 병사들은 혹독한 겨울에서 나폴레옹의 욕망을 짊어진 것처럼, 윤석열의 병사들 또한 권력의 무리한 결정에 희생될 뻔한 과정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히틀러의 몰락이 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수많은 고통의 응어리로 드러난 것처럼, 권력의 잔해는 그 속에 담긴 모든 희생과 고뇌를 드러낸다. 우리가 이와 같은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더 나은 선택을 통해 비극의 순환을 끊고자 함이다.
노르던의 그림과 히르비겔의 영화는 단지 비극만을 말하지 않는다. 작품들은 권력의 몰락이 인간적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남길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윤석열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도, 병사들과 시민들이 본능적으로 인간성을 지켰기 때문이다. 권력의 폭주는 인간적 본질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역사와 예술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강력한 의미이다. 우리는 이 희망의 가능성을 통해 그때의 비극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