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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 Dec 24. 2024

성탄축제, 찬가와 폭력이 양립하는 시간

[에세이]  화려함의 뒤편에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전쟁


성탄절은 한때 소박한 축제이자 세계가 사랑과 연대로 묶이는 상징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크루지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마음을 열었고,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자기희생으로 진정한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는 이 모든 의미에서 멀어졌다. 축제의 장식 뒤에는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논리가 뚜렷이 자리 잡았다.     


디킨스가 통찰했던 빈곤과 연대의 서사는 이제 상업화된 진열장 속 적나라한 상품으로 변질되었다. 화려한 조명과 캐럴은 잠시의 환상과 위로를 주지만, 그 뒤에는 여전히 빈곤과 불평등이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가난한 자를 품으라는 메시지는 소비를 부추기는 배경음악으로 전락했다. 스크루지의 자비는 카드 결제와 광고 속에서 힘을 잃었다.     


오 헨리의 단편에서 그려진 희생과 사랑 역시 현대의 소비문화 앞에서 빛바래고 있다. 더 비싸고 더 화려한 선물을 찾는 데 몰두하는 현대의 크리스마스는 서로의 마음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소비의 과시를 위해 존재하는 행사로 변질되었다. 따뜻한 마음의 확장보다는 고가의 선물이 우선시되는 현실이 굳셀 뿐이다. 그 속에서 진정한 사랑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 성탄절 매해 반복되는 크리스마스 시절, 상품 진열 가게. 사진출처=https://unsplash.com/ ⓒ Michelangelo Azzariti


트루먼 카포티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소박했던 한날을 자전적으로 그린다. 그러나 오늘날 가족과 따뜻한 정서를 교감하기보다는 화려한 선물과 소비 경쟁이 우선된다. 카포티가 그려낸 정겨운 크리스마스는 자본주의 속에서 상품화된 환상으로 희미해졌다. 가족 간의 온정과 교감은 소비의 굴레 속에서 쉽게 잊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축제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현대의 크리스마스에서도 사랑과 자비를 노래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평등을 감추고 자본의 축제가 빛난다. 특별한 기념일로 소비와 쇼핑에 몰두하면서 소외된 자들은 점점 더 배제된다. 오히려 그들의 고통은 기득권의 안락을 위한 배경음악 속에 묻히고 만다. 축제의 화려함이 드러날수록 그 이면의 어둠은 더욱 깊어진다. 우리는 진정으로 크리스마스의 가치를 기억하고 있는가?     


캐럴은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지만, 현실은 그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고, 그 뒤에는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적 개입이 자리한다. 캐럴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정말 평화를 느끼는가? 아니면 잔잔한 멜로디 속에 불편한 진실을 묻어버리는가?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전쟁과 빈곤, 불평등 속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의 선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정한 사랑과 평화는 정의가 실현될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 속 캐럴은 소비를 부추기고, 불평등과 갈등을 은폐하며, 위로를 가장한 공허함으로 우리를 이끈다. 캐럴의 아름다운 선율은 현실의 고통을 가리기에는 너무나 얇다. 우리는 이 선율이 덮어 버리는 진실을 직면해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사랑과 연대의 상징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상품화된 환상으로 변질된 이 축제 속에서 진정한 의미는 찾아보기 어렵다. 디킨스의 스크루지가 변화했듯, 현재의 우리는 시대의 아픔과 소외된 이들을 품을 수 있을까? 자본과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크리스마스는 연대와 희생의 축제가 아닌, 각자의 소비와 과시를 위한 연중행사로 전락했다. 이러한 현실은 크리스마스의 본질적 가치를 잃게 만든다.


▲ Resistance 미국과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진출처=https://unsplash.com/ ⓒ Patrick Perkins


캐럴의 선율로 장식된 크리스마스는 정말 우리 모두를 위한 찬가인가? 아니면 누군가만을 위한 화려한 축제의 소음인가? 세밑이 다가올수록 소외되고 위축되는 사람들은 더 늘어간다. 반짝이는 멜로디 뒤편에는 여전히 소외된 이들의 침묵이 가려져 있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뒷골목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이 어둠 속에 사그라진다. 이러한 침묵은 축제의 이면을 직시하게 한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불평등의 축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화려함 속에 가려진 빈곤과 고통은 크리스마스가 가진 본질적 메시지를 배반한다. 우리는 이 축제에서 진정한 평화를 꿈꾸는가, 아니면 단지 소비를 통해 위안을 얻으려 하는가? 소비와 불평등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축제의 의미는 다시 질문되어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쇼핑과 소비의 축제로 전락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연대와 사랑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이상을 추상화하는 게 아니라, 현대적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진정한 크리스마스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크리스마스는 계속해서 자본주의의 상품화된 환상에 머무를 뿐이다.     

지금, 도심의 카페에서 'Noel'을 들으며,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되는 시간이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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