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철도원 삼대>와 노동자의 투쟁 (4-1)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는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장대한 서사시이자,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한 가문의 이야기로 응축해 낸 소설이다. 작가는 한 사람의 저항을 넘어, 세대를 관통하며 이어지는 시대의 고통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연대의 끈을 그려냈다.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를 되짚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노동 현실의 맥락을 파고든다.
이 소설의 시작은 고공 농성을 벌이는 이진오의 모습으로 열린다. 그는 분할매각과 직장 폐쇄로 인해 일자리를 잃자, 복직을 요구하며 굴뚝 위에 오른다. 역설적으로 이곳은 철저히 고립된 공간으로 현실과 사회의 무관심을 응축한다.
이진오는 뜨거운 철탑 위에서 햇볕에 달궈진 고독을 껴안으며, 땀에 젖은 절박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의 싸움은 불타는 태양 아래서 시들어가는, 잊힌 노동자의 목소리를 되살리려는 갈증 어린 몸짓이다. 타는 목마름 속에서 외로이 버티며, 사막의 모래알처럼 허공에 흩어지면서도 하늘과 땅 사이를 채우려 한다.
굴뚝 위에서의 생활은 규칙성을 유지하지만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작가는 이진오의 일상적인 생존 투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좁은 공간에서의 움직임, 식사와 용변까지도 철저히 계획되고 제한된 그의 일상은 인간의 모습이면서도 쫓겨나는 노동자의 이질성을 표면화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혼자라는 현실 속에서도 동료들과의 유대감으로 버텨낸다. 그의 고독은 한 사람의 몫이 아닌, 노동자들이 짊어진 현실의 무게다.
이진오의 투쟁은 곧 한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그의 조상들, 증조부 이백만부터 시작해 할아버지 이일철, 아버지 이지산까지 이어지는 가문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철도와 연관된 삶을 살았고, 가족의 삶을 의탁해왔다.
이백만은 일제 강점기 철도공장에서 일했고, 이일철은 식민지 조선에서 기관사가 되었지만, 차별과 억압을 견뎌냈다. 이지산은 전쟁 중 기관사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며, 전쟁과 포로 생활의 상처를 품었다.
이철은 몇 달쯤 지난 뒤에야 이런 일이 결국은 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임을 알게 된다. 이미 수년 전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되었으나 몇 달 만에 일제에 의해 검거되었고 뒤를 이은 사회주의자들의 이차, 삼차 재건 운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 본문 126쪽 중에서
이 문단은 단순한 각성의 순간을 넘어, 이철이 시대의 투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전환점을 의미한다. 조선공산당의 반복된 재건과 실패는 일제 강점기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이 겪었던 탄압과 억압의 연속성을 상징한다.
이는 노동 운동이 단순한 이념적 선택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성과 생존을 위한 절박한 저항의 산물임을 암시한다. 이철의 각성은 이후 전개될 투쟁의 서사를 이끄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깨우고, 조직적인 저항의 불씨를 지피며,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으로 자리 잡는다.
작가는 이들 세대를 연결하며 한국 근현대사를 노동자의 생애로 재구성한다. 일제의 착취와 폭력, 해방 이후의 혼란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의 노동착취는 이 가족의 삶을 중심에 두고 휘몰아친다.
각 세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벌이게 되며, 그들의 투쟁은 모두 하나의 궤를 이룬다. 이진오가 굴뚝 위에 오른 순간, 과거의 모든 투쟁이 그의 몸에 응축되어 터져 나온다.
황석영 작가는 이진오의 삶을 서술하며, 체제 내에서 한 사람의 저항이 얼마나 쉽게 무력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외침은 허공 속에 흩어지고 굴뚝 아래에서는 도시의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상에 묻혀 그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쉽게 잊는다. 사회는 노동자들의 싸움을 불순한 것으로 치부하며, 경제 성장이라는 논리로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뭉개버린다.
이이철이 말했다. “당재건운동은 밑바닥 현장 노동자의 투쟁을 통하여 아래로부터 조직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본문 466쪽 중에서
이이철의 대사는 당 재건 운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노동운동이 ‘밑바닥 현장 노동자’의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운동의 진정한 힘이 기층 민중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드러내며, 아래로부터의 조직과 저항이 상부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암시한다.
황석영 작가는 진정한 혁명은 권력의 중심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부각하며, 민중의 힘을 재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