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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 Dec 17. 2024

어둠의 명령에 생긴 균열들

[에세이] 진실에 관한 판단, 항명. 그리고 살아가는 민주주의


12월 3일, 민주주의의 시간은 갑자기 멈춘 듯 보였다. 계엄령이 선포된 순간,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전국은 낯선 고요에 잠겼다. 명령이 마치 단단한 금속처럼 흘러내려 시민들의 목소리를 짓누르려 했지만, 이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국회로 진입하려는 장갑차를 몸으로 막아 세웠다. 억압과 침묵의 시간을 부드럽게 깨우는 건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하고 총명한 움직임이었다.     

국회의사당은 그날 밤, 두 개의 갈림길에 섰다. 계엄군의 발걸음은 무겁게 의사당을 향했지만, 그 어디에도 쉽게 넘어설 수 없었다. 본회의장에 모여든 의원들은 이 순간이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할 것임을 알았고, 끝내 자리를 지켰다.

물리적 힘이 아닌 법과 절차로 이겨내려는 결의는 흔들림이 없었다. 심장을 향한 칼날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그것을 막는 방패는 결국 국민의 뜻이었다.     


일부 장성들은 체계적 명령을 준비하며 더 강력한 2차 계엄을 구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병사들 사이에서는 회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명령에 망설였고, 누군가는 고개를 돌리며 민주주의 편에 섰다.

그 순간 균열이 생긴 곳은 군사 조직의 표면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신념이었다. 철갑 같은 명령 속에서도 윤리와 가치의 힘은 틈을 비집고 나왔다.     


707특임단 대원이 직접 그린 그림 '계엄이 실패한 이유'



언론은 계엄령의 그늘을 비집고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에는 통제의 위협으로 그물을 드리웠지만, 기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전했다. 정제된 활자는 억눌린 사실을 자유롭게 풀어냈고, SNS와 독립 매체는 번개처럼 빠르게 소식을 전파했다. 어둠 속에서 뿌려진 진실의 빛은 더 넓은 곳으로 퍼져 나갔다. 숨겨진 말들이 퍼져나갈 때, 계엄의 철벽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다. 국회의사당 출입문에 모여든 사람들은 경찰과 계엄군을 막아서며 평화의 함성을 외쳤다. 질서 있는 저항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었다. 이들은 무기를 들지 않고도 어떤 군대보다 강한 힘을 보여주었다. 연대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뿌리였다.     


군 내부의 항명은 결정적이었다. 일부 지휘관들은 명령을 거부했고, 몇몇 부대는 출동을 멈추었다. 병사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퍼져 나갔다. 군대의 철저한 명령 체계가 흔들리며, 더 큰 물결이 만들어졌다. 강요된 힘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것은 군대가 아닌 맥없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윤리와 양심이 철조망을 넘어설 때, 진정한 힘은 그곳에 있었다.     


군 내부에서는 계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움직임이 확인되었다. 특히, 국군 방첩사령부의 법무장교 7명 전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계엄군 투입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은 상부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법적 절차와 민주주의 가치를 우선시하며, 불법적인 명령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내부의 반발은 군 조직 내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또한, 육군 제707특수임무단은 계엄령 선포 당시 국회에 투입되었으나, 현장에서 작전의 비합리성과 무리함을 인지하고 부대원들의 안전을 우선시하며 작전을 중단했다. 그는 국회 진입 시도 중 거센 저항에 부딪히자, 더 이상의 무력 충돌을 피하고자 철수를 결정했다.


철수하는 국회 투입 계엄군. 사진=서울신문


이러한 판단은 군 내부에서도 명령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닌, 상황에 따른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외신들은 한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시민들의 평화로운 저항과 군 내부의 균열은 전 세계의 시선을 끌었다. 자유와 권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 민주주의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는 군대와 명령을 이겨낸 한국 사회의 성숙함을 찬사를 보냈다. 한국의 이 작은 불씨는 결국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빛이 되었다.     


결국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며 위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국민의 뜻을 담은 국회는 단단한 문을 열고 민주적 결론을 냈다. 시민들이 만든 변화는 법적 절차를 통해 완성되었고, 이 과정은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복원을 보여주었다. 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지켜진 법과 절차는 희망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이번 사태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계엄령이라는 위기 앞에서 드러난 시민들의 연대, 군대 내부의 윤리적 판단, 그리고 언론과 법원의 역할은 모두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명령과 통제는 잠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이기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의 신념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살아 있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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