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 설국의 난임 일기
난임을 의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혼하면 으레 아이가 생길 거라는 일반적인 코스를 벗어나 하루아침에 ‘보통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은 뜻밖의 여정이다.
난임 생활은 대체로 쓸쓸하다. 온전히 부부 둘만의 노력만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과정이라 그렇다. 심지어 아무리 가까운 부부 사이라도 완전히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는 미세한 균열로 벌어졌다 좁혀졌다를 반복한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동굴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하지만 삶이란 신비롭다. 북적이는 군중 속에서 외로움이 깊어지고, 홀로 감정을 삼킬 때, 오히려 주변의 온기가 또렷해진다.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지만, 사람을 통해 희망을 얻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은 무료하고 고독한 반면, 반짝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행복으로 세상이 달라진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 공기가 일순간에 향기로워지는 걸 우리는 자꾸 경험한다.
PGT 통배(통과배아)를 이식하고도 마의 임신 8주 차를 넘기지 못했던 그 겨울은 어쩌면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였어야 했다. 정기 검진에 갔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텅 빈 마음이 되었다. 통배만 나오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론적으로 꽤 높다는 통배 임신 성공률은 나를 비껴갔다. 99.9%의 성공률이 나를 피해 간다면, 내게는 실패율 100%와 같다. 그런데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는가. 잘 먹고 잘 쉬며 회복한 다음 다시 병원에 가는 수밖에. 비록 잠시뿐이었지만 우리에게 와준 아이와의 이별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애도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진료실에서 나오니 늘 그렇듯 담당 간호사님이 내게 먹어야 할 약, 다음 내원 시기를 알려줬다. 차분하고 친절한 목소리. 그러나 나는 안다. 2년 가까이 보아온 사이인 만큼 그가 애써 참고 있음을. 어설픈 위로가 내게는 날카로운 화살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말을 아낀다. 그런 그가 전해주는 안내지를 받으며 인사를 건넨다. 다음에 보자고 희미하게 웃어 보였지만 실은 고맙다는 인사. 그게 그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나 보다.
간호사님이 돌아서려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내 못 참겠다는 듯 조그마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눈물을 펑펑 쏟는다. 자기도 이렇게나 속상하고 슬픈데 왜 덤덤해 하느냐며 대신 하늘에게 화를 내고 가슴을 친다. 나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을 붙잡고, 울지 말라고(아니, 속으로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간호사님은 몇 번이고 사과하며 한참을 더 울었다. 담당 간호사님은 내 조력자이기도 했지만, 곧 출산을 앞둔 만삭의 임신부였다. 그간 임신의 기쁨을 펑퍼짐한 유니폼 속에 감추며 임신을 기다리는 이들을 배려한 심성을 충분히 짐작한다. 엄마를 닮았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그 아기는 내게도 소중했다.
그러고 보니 그와 비슷한 눈물을 본 적이 있다. 이전 병원에서 PGT 검사를 연속으로 네 차례 나 진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통과 배아를 보지 못했다. 마지막 검사의 결과를 듣던 날, 주치의 선생님은 결과를 설명하다 애써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자기 일처럼 마음을 다해 울어주다니 내가 다 후련했다.
그리고 내게 PGT 통배가 오게 해 준 두 번째 병원의 주치의 선생님을 같은 병원의 다른 지점으로 옮기신 이후 우연히 한 카페에서 만났었다. 병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환자와 의사 아닌 채로 인사를 주고받기가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반가웠다. 새로운 병원의 시술 허가가 나는 대로 곧 시험관을 하러 찾아가겠다는 말에(당시에는 전원 계획이 없었다), 주치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까지 쉬지 말고 자신이 아닌 다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얼른 임신에 성공하라고 아니 자기에게는 둘째 아이를 가지러 오라고, 내 등을 두드리며 기도 같은 인사를 해주셨다.
난임이라는 뜻밖의 여정. 어떤 결말을 맺을지 알 수 없지만, 여태까지 보낸 시간이 적어도 내게는 온통 괴롭거나 북받치는 돌덩이는 아니었다. 나 혼자 노력하는 줄 알았다. 나 혼자만 고대하는 소원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누군가 나를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다.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 어떤 것도 묻지 않던 친구는 먼저 내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맙다고 기다리는 동안 나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기다리는 줄 아는 지인들도 하늘을 향해 나의 이름을 올렸다. 그 마음들이 힘을 모아준 덕분에 지금도 나는 이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해피 엔딩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언젠가 우유 냄새 폴폴 나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그들 한 명 한 명을 만나러 가고 싶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함께, 너를 향해 얼른 오라고 함께 손짓해 준 사람들이 이분들이라고, 포동 포동하고 발그레한 얼굴의 너를 그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 우리 모두의 기도가 드디어 이뤄졌노라고 함께 기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