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 설국의 난임 일기
2년을 기다려 통배(PGT 검사를 통과한 정상 배아) 하나를 얻었다. 지난 6개월간 시험관 시술 없이 아주 푹 쉬었다. 임신에 대한 무게감을 잊고 신나게 놀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심지어 해당 차수에는 과배란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 가족 여행을 떠났고, 그동안 와인과 맥주를 배부르게 마시기도 했다. 영양제도 챙기는 둥 마는 둥 생각나면 먹고 아니면 건너뛰었다. 그만큼 시험관 시술을 하는 동안 무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던 집착을 놓고, 어쩌면 이번이라고 다르겠냐는 일종의 반항심으로 임한 차수였다.
그런데 통배가 나와버렸다. 현실이 맞나 싶어 얼떨떨하며 PGT 검사 결과지를 받아들었다. 정말이지라는 오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깨끗한 결과지. ‘이게 정말 내 아이일까?’
이식 준비에 설명을 듣고 진료실을 나오는 길, 담당 간호사님이 덥썩 내 손을 잡았다. 너무 잘 되었다고. 그가 진료 준비를 위해 먼저 주치의와 검사 결과를 확인했을 때, 주치의가 ‘드디어 나왔다’며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고 전했다. 평소 감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담당 선생님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방금 전에 본 너무나도 차분했던 표정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채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 그는 그 와중에도 PGT 검사 결과지를 꼭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전 병원에서는 추가 비용 없이 발급해주던 결과지를 천 원을 내고 받았다. 평소라면 아깝다고 불평했을 그 금액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훈장 하나를 받은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남편은 그 결과지를 집 어디에서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결과지를 두고서, 지나갈 때마다 매번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유심히 들여다봤다. 벌써 아기가 태어나기라도 한 듯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렇게나 반가운 통배였다. 보다 안정적인 착상을 위한 과정이 이어졌다. 담당 선생님은 일부러 수술실까지 열어 생리가 끝나고도 자궁에 소량 남아 있을 혈액들을 꼼꼼히 닦아내고, 미리 자궁내막염도 치료했다. 내막을 키우다 좀체 속도가 미진하자 한 달을 미루면서까지 신중하게 이식에 임했다. 포근한 자리 최적의 위치를 잡아 내 안에 배아를 품었다. 그로부터 10일 뒤, 임신 여부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가슴이 뛰었다.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을 비워야지하며, 전화를 받았다. 피검 결과는 112, 일자에 맞는 안정적인 수치였다.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를 높여 정말이냐고 되물었고, 간호사님도 몇 번이나 재확인한 수치라고, 본인도 마음이 조급해 서둘러 확인한 결과라고 알려주었다. 드디어 우리도 엄마아빠가 될 차례가 온 것이다.
초음파 검사 날, 아기집을 확인하려는 손길이 유독 분주했다. 이쪽을 보고 저쪽을 보고 갸우뚱,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그리고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아기집 안에 심장 두 개가 반짝거린다고. 아무리 들여다 봐도 이상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나 두 아이가 아기집 위아래도 사이좋게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일란성 쌍둥이였다. 건강하게 뛰는 심장 소리도 똑똑히 들었다. 담당 선생님은 눈사람 모양이었던 배아가 빠져나오면서 둘로 나뉜 모양이라고, 드물긴 하지만 아주 없는 경우는 아니라고 잘 키워보자고 격려했다. 그간 아가를 기다린 만큼 한 번에 둘을 보내주신 모양이라고, 함께 PGT를 검사를 진행하던 오픈 채팅방 사람들도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었다. 그만큼 나는 난임 그것도 PGT의 세계에서는 고인 물이었다. 이제 곧 난임 병원을 졸업하고 아가를 만나보리라는 기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산과에 진료 예약도 잡았다. 이제부터 모든 일이 술술 풀릴 일만 남았으니까.
인생은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다음 번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나와 가장 먼저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과연 하늘이 내게 바라는 뜻이 무엇일까, 곰곰이 곱씹었다.
밖으로 나가 남편 옆에 말없이 앉았다. 아가들이 잘 있다는 소식을 기다리던 그의 귀에 대고 ‘안 됐어’라고 속삭였다. 몇 번이고 시도해 봐도 심장 두 개 모두 멈춰 있다고, 최대한 덤덤하게 있는 일을 전하려 애썼다. 여태까지처럼 이번에도 안 된 것뿐이라고 다음 번에는 잘 될 테니 힘을 내 보자고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던 찰나, 나는 나오려던 모든 말들을 삼키고 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이 울고 있었다. 작은 소리 하나도 내지 않고 눈물만 잔잔히 흘려보냈다. 얼굴이 눈물로 온통 젖어도 닦아낼 생각조차 없이. 그리고는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가를 갖고 싶다는 자기 욕심 때문에 아내인 나를 힘들게 한다고 몇 번이고 사과하고 자책했다. 촉촉하게 젖은 남편의 눈가를 닦아주고 그의 곁에 더 바짝 다가가 앉았다.
누구도 미안해 할 일이 아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릴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작용하는 임신과 출산의 세계를 일개 인간이 파악할 도리는 없다. 그냥 지금 일어난 일일뿐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서로를 탓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둘이서도 부족함 없이 행복한 일상을 지내는 것이었다.
담당 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PGT 검사가 파악하기 어려운 미세결실이 원인일 거라고 추측했다. 더 이상 유산이라는 이별을 겪고 싶지 않아서, 아프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PGT 검사도 완벽하지 않았다. 건강한 임신을 가능하도록 확률을 높일 뿐 나에게는 100%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담당 선생님이 같은 병원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동안 몇 개월의 공백이 생겼다. 같은 병원의 다른 선생님과 PGT 검사를 계속 진행할지 아니면 아예 다른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전원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간 과정 없이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PGT 검사 없이 이식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 두 번째 전원, 세 번째 병원이었다. 그 후로도 1년 넘게 채취와 이식을 반복하는 동안 여전히 우리는 같은 단계에서 처음으로 돌아간다. 과연 이게 옳은 선택일지 의문이 들 때마다, 나는 나 때문이라고 되뇌던 남편을 떠올린다. 우리가 아직 아가를 만나지 못한 건 당신 탓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반드시 남은 인생을 아낌없이 쏟아 부으며 함께 사랑할 그런 존재를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