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날 만큼 행복한 시간들
엄마와 뮌헨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에,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려고 했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준비를 하고 동네 빵집에 가서 커피와 빵의 여유를 즐기셨다. 나는 적당히 8시 반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엄마를 기다렸다. 잠시 뒤 엄마가 빵을 들고 등장을 하셨다. 나도 빵을 맛있게 먹고 준비를 마치고 같이 집을 나섰다.
오늘의 코스는 미술관이다. 첫 코스는 알테 피나코테크이다. 전에도 한 번 갔던 미술관인데, 3개의 피나코테크 미술관 중 가장 과거를 담당하는 미술관이다. 엄마가 미술 작품에도 관심이 많고, 미술관 구경을 좋아해 첫 코스로 넣었다. 큰 미술관이라서 위층을 구경하는데만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위층에는 종교적인 색채의 그림이 많았다. 위층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루벤스의 최후의 심판이었다. 커다란 그림의 크기에 압도되는 것도 있었지만, 루벤스만의 화풍으로 그린 최후의 심판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그렇게 위층 관람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 카페가 있어 잠시 쉬어갈 겸 카푸치노와 사과타르트를 주문했는데, 사과타르트가 정말 맛있었다. 사과가 가득하고 파이지가 적당히 바삭 촉촉해서 다 먹었다. 그리고 이 카페는 채광이 좋았는데, 그래서인지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다음에 여기서 책을 읽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다음 구경에 나섰다.
아래층은 회화 작품 중 풍경화와 정물화가 많았다. 모네나 반고흐와 같은 작가의 그림이 많았다. 여기도 인상 깊은 그림이 많았는데, 뮌헨의 비어가든을 그린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뮌헨의 흥겨운 분위기와 맥주가 잘 드러나서 ‘뮌헨’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무가 그려진 그림도 끌렸다. 겨울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감성이 잘 묻어나서 오랫동안 보고 있었다. 나의 원픽은 반고흐의 오베르의 평원이라는 그림이다. 그림에서 포근하면서도 밝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 같다. 여기저기 구경을 마치고 기념품 가게에서 엽서도 두 개 사서 근처 카페로 향했다.
우리가 온 카페는 뮌헨에서 내가 가장 많이 온 곳인 방앗간 카페이다. 최근에는 여행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뮌헨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 간 카페이다. 사과 타르트 때문에 배가 아직 불러서 샌드위치와 차를 주문해서 먹고 산책에 나섰다. 엄마랑 같이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와있는 게 꿈 같이 행복했다. 미술관에서부터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행복한 하루였다.
배부르게 먹고 걸어서 언니가 다니던 학교로 갔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어서 안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가 온 이유 중에는 딸들이 지낸 공간과 생활하던 장소들을 보고 싶어서도 클 것 같은데, 이렇게 마지막 날에 언니 학교까지 같이 들어갈 수 있어서 뿌듯했다. 언니 학교도 보고 우리는 영국정원으로 향했다. 여기도 엄마랑 꼭 같이 오고 싶었는데, 예상대로 엄마가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오늘 날씨도 좋아서 공원이 더 아름다웠다. 내가 좋아하는 서핑하는 장소에 갔는데, 겨울인데도 맑은 날씨라 그런지 사람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서핑 구경을 좋아했어서 엄마랑도 꼭 같이 보고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렇게 영국정원 산책도 하고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라는 현대 미술관으로 향했다. 여기는 현대 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공간인데, 나는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을 좋아해서 엄마랑 같이 와서 쫑알쫑알 얘기를 하고 같이 구경하고 싶었다. 예상대로 엄마도 좋아해 줬다.
그렇게 마지막 코스까지 마치니 집에 가기가 아쉬웠다.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어디에 갈지를 고민하다가 아우구스티너로 향했다. 뮌헨에서 맥주집을 가본 적이 없어서 가장 좋아하는 아우구스티너로 향했다. 들어가 보니 여기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놔서 분위기가 한층 더 cozy 했다. 둘 다 느끼한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소세지랑 사우어크라우트,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라들러랑 아우구스티너 헬을 주문했다. 라들러는 과일의 상큼함과 달달함이 섞여있었고, 헬은 역시 청량하고 가벼워서 맛있었다. 마시다 아쉬워서 흑맥주를 주문했는데, 역시 더 진한 맛이었다. 엄마는 진한 술을 좋아해 흑맥주를 가장 좋아하셨고, 나도 라들러는 과일과 맥주의 조화가 아직은 낯설어서 헬과 흑맥주가 더 맛있었다. 소세지는 신기하게 육향이 진하고 식감이 쫄깃한 것도 부드러운 것도 아닌 신기한 식감이었지만 맛있었다. 맥주를 마셔서인지 엄마랑 얘기도 진솔하게 했는데, 엄마는 오히려 엄마가 왔다 간 후에 내가 외로울까 봐 위험할까 봐 걱정되신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가 오래 출국할 때도 공항에서 울지 않으셨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물을 한 방울 흘리셔서 놀랐다. 그리고 나도 같이 눈물이 났다. 나도 엄마가 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간 후에 조금 심심할 것 같다고 무거운 진심을 가볍게 돌려서 말했다. 그러고는 바로 웃을 수 있는 얘기로 바꿨지만 엄마가 나를 너무 걱정하실까 봐 걱정이다. 내가 더 씩씩하게 든든하게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부르게 먹고 드디어 집으로 향했다. 내일 12시 반쯤 집을 나설 계획이라서 짐을 미리 챙겨놨다. 캐리어 자리가 부족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 들어갔다. 그러고 씻고 영국 여행 계획을 알아보다가 잠에 들려고 한다.
엄마가 온 열흘 정도의 시간 동안 오늘이 가장 날씨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가장 행복했던 날도 오늘인 것 같다. 물론 하루하루가 눈물 날 만큼 행복했지만, 오늘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소중하고 빛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바라는 하루였다. 엄마도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 내일은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엄마가 돌아가면 슬프고 보고 싶겠지만 정신없이 지내면서 또 잘 적응하고 싶다. 그리고 헤어질 때 웃으면서 씩씩하게 헤어지고 싶은데 지금도 울고 있어서 이건 힘들 것 같다. 내일이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