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돌아온 백수의 하루
하루하루의 시간이 정말 빠르다. 뭐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70일이나 지났다. 한국에서의 시간도 빠르게 갔지만, 여기는 유독 빠르게 가는 것 같다. 어느새 혼자 여행하는 날이 2주 정도 남았다. 이 시간이 아까워서 뭐라도 더 하고 싶어 지는 것 같다.
오프닝과 대조되어 머쓱하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쉴 틈 없이 이동을 해서 이틀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오늘이 그 첫날이다. 원래는 미술관 카페에 가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집콕 하루를 보냈다. 그동안은 집에 있어도 마트라도 가고 빨래라도 한 것 같은데 오늘은 정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12시에 잤더니 9시 넘어서 눈이 떠졌다. 일어나서 침대에서 뒹굴다가 책을 조금 읽고 배가 고파져서 점심을 만들었다. 점심은 샐러드와 카레 리조또! 사실 카레 볶음밥을 만들려고 했는데, 햇반 돌리는 것을 깜빡하고 바로 넣는 바람에 급하게 햇반에 물을 넣었다. 물만 넣으니 죽처럼 만들어졌는데, 카레 죽은 이상할 것 같아서 우유랑 치즈를 넣고 리조또처럼 만들었다. 샐러드는 어제와 똑같이 채소랑 방울토마토를 올리고, 발사믹 글레이즈드를 뿌리고 치즈를 올려 마무리했다. 리조또 위에 구운 소세지도 하나 올렸더니 든든한 점심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는 커피를 타고 쿠키를 세팅했다.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독서모임 책이 오늘까지라서 급하게 다 읽었다. 이번 책을 뉴로맨서라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책이었다. 사이버펑크라니 장르부터 처음 들어봤다. 조금 더 알려진 SF 분야의 책들도 읽어본 적이 없고, 유명한 SF 영화들도 거의 안 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읽어서 그런지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하는 게 처음에는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래도 조금씩 읽다 보니 내용을 따라가는 것까지는 가능해졌다. 시작부터 끝까지 어두운 배경도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사이버펑크 장르만의 특색인 것 같다.
새로운 장르라서 과연 어떻게 끝날지가 궁금했는데, 스포는 못하지만 꽤나 만족스럽고 여운이 남는 결말이라 신기했다. 독서 모임을 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접하고 세상이 넓어지는 것 같아서 좋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작성해 오랜만의... 지식 활동을 끝냈다.
중간중간 블루베리랑 토마토도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 않아 저녁은 와인과 과자로 대체했다. 머스캣 와인이었는데, 오묘한 맛이었다. 와인의 맛이나 과일 맛은 강하지 않은데 과일의 달달하고 상큼한 향, 그리고 와인 향이 강했다. 그야말로 향은 꽤 진한데 맛은 그에 비해 덜 진해서 부담 없이 넘어가지만 살짝의 반전이 있는 맛이었다.
사실 오늘의 메인 할 일은 가족여행 숙소 마무리였다. 혼자 가는 것보다 몇 배는 열심히 찾아봤다. 결제도 오늘 안으로 하라고 해서 이것저것 마지막으로 알아보고 결제를 하니 어느덧 1시가 넘어있었다. 신경도 많이 썼고 피곤해져서 조금 놀다가 바로 잠에 들었다. 이제 슬 여행이 많이 지나갔기도 하고, 4인 가족의 9일 숙소를 예매하느라 통장이 바닥났다. 물론 부모님이 숙소 비용은 다시 보내주시겠지만.. 작년부터 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인생에서 한 번뿐일 것 같은 이번 추억을 위해 모은 작년에 대해 보상을 받는 기분이라서 뿌듯함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백수의 하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