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로또 부부다.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식성도 취향도 모두 다르다. 집안 어른들의 소개로 혼기가 차다 보니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채 서둘러 결혼을 결정하고 말았다. 양가 부모님들과 소개해준 친척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우리 둘만 잘 살면 되는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신혼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 좋은 남편은 친구도 많아 늘 술자리가 끊기질 않았다. 퇴근 후 저녁까지 잘 먹고는 친구 전화에 거절도 못하고 나간다. 내 잔소리에 “친구를 끊으란 말이냐”며 후다닥 나가 버린다. 그런 일로 여러 번 다투다 급기야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았다. 재산 분배는 깔끔하게 반으로 나누자 하기에 아이들 3명은 내가 키워야 하니 최소 4/5는 있어야 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냥 나가라는 말과 같았다. 어이가 없었는지 흐지부지 그러다 말았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남편이 재산을 포기했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이혼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 후론 둘 다 이혼의 ‘이‘자도 섣불리 꺼내지 않았다. 남편은 재산을 빼앗길 새라 나는 이혼당할 새라. 서로 생각은 달라도 결론은 하나 아직은 이혼 불가.
봉급쟁이들 가슴에 사표 한 장씩 품고 직장 생활하듯 부부들도 마음속에 이혼 생각 한 번쯤 안 하고 살았을까. 안 했다면 그건 거짓말 일 것이다. 나는 수도 없이 이혼 생각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 막내 결혼식 다음 날 보란 듯 이혼 서류를 내밀 것이다. 두고 봐라. 그리고 아주 멋있게 돌아 설태다. 그때는 나를 붙잡아도 소용없고 재산도 필요 없다. 애들도 다 크고 돈도 필요 없을 태니 멋있게 떠나리다. 속으로 다짐 또 다짐했다. 애들 때문에 참고 살아준다며. 과연 남편은 가슴에 무엇을 품고 살았을까.
낮엔 아이 셋을 데리고 씨름을 해서 밤에는 좀 쉬어야 했다. 남편의 잦은 음주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고생이 심했다. 지금처럼 대리운전이 없었을 때다. 택시 타고 들어오면 될 것을 꼭 나를 불러 데리러 오라 했다. 밤잠을 설치면 다음 날 영향이 크다. 그런 생활이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밥은 안 먹어도 견디는데 잠을 제대로 못 자면 힘들어하는 나, 잠은 좀 덜 자도 밥은 꼬박 먹어야 하는 남편. 근본적으로 서로가 다르다.
평소엔 몹시 가정적이고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누구나 인정하는 ’ 젠틀맨‘이다. 성실하고 반듯하여 동네에선 선망의 대상이었다. 집 안팎에서 큰 소리 한 번 친 적 없고 공부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며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바른 사람이다.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게 할 것을 강조하는 멋진 아빠다.
“아빠가 청소하셨나, 엄청 깨끗해” 아이들은 아빠가 청소한 것을 금방 알아챈다.
맞다. 청소 하나만큼은 국보급이다. 인정한다. 나는 그저 ’깨끗한 청소‘ 만을 남편은 정리 정돈과 청소를 동시에 한다.
그러면 무엇하나 평소 쌓아 둔 점수 술로 다 까먹는데. 음주가 더 좋은지 사람이 더 좋은지는 분명하지 않아도 둘 다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다, 거절을 못 하고 약속을 잡으니 주 3회 정도는 꾸준히 술과 함께한 것 같다. 천만다행이었던 점은 집에서는 술을 안 마신다는 철칙이다. 친구이건 동료이건 집에서까지 술판을 벌였다면 아마도 내가 집을 나갔을 것이다. 술 마시면 바로 집에 들어오지 말고 술 다 깨면 들어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렇게 제안을 했을까. 외박으로 여기지 않을 테니 제발 술 깨고 들어오라는 나, 죽어도 들어오겠다는 남편.
신혼 때 아침을 간편하게 토스트, 달걀 풀라, 주스와 커피 등 ’ 아메리칸 스타일‘로 차려 놓았더니 빈 속으로 출근한 적이 있다. 나는 아침에 커피 한잔이면 되는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많이 차려 줬는데 마다하고 자기는 빵은 못 먹고 밥도 국 없으면 못 먹는단다. 그러면 카투사 당시 ’ 햄버거와 주스‘ 이야기는 뭐냐고 했더니 그래서 한국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한식과 맞바꿔 먹었단다. 아, 그래서 어머님이 그렇게 많은 반찬을 보내셨구나. 나를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아들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어머님이 가끔 서울에 올라오시면 어머님과 나는 수다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끼니를 놓친다. 그때 등장하는 남편.
“밥 먹읍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 시켜 먹자.”
배달 음식은 절대 안 먹는 남편이었기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들은 과묵해서 대화가 많지 않은데 너랑 이야기하니 즐겁고 고맙다” 하셔서
“식사도 못 차려 드리는데 싫지 않으세요?” 했더니
“괜찮다 거기 앉거라. 아까 그 이야기 계속하자.”
식사 후 남편은 방으로, 우리는 식탁에 앉아 못다 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막내아들이 내년에 식을 올린다. 드디어 때가 왔다. 미루어 왔던 카드, 이혼 예약서 그동안 품속에만 간직해 오던 그 서류를 곧 내밀어야 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다짐 또 다짐해 오던 마음속의 그 서류, 그 서류. 찾을 수가 없다. 몸속에 녹아 사라진 것일까. 보이질 않는다. 산산이 흩어져 휴지 조각이 되었을까.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없어졌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굳이 찾아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