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저물어가는 것 / 파란
사라져 가는 것...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색이 바래고 자취가 없어진다. 기억이나 감정은 점점 희미해져 결국 소멸하고 만다. 저물어가는 것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날이나 해가 바뀌며 결국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희열에 찬 얼굴로 맞이하며 저물어가는 것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왠지 어둡고 힘없고 초라해 보인다. 쓰임을 다 한 후 저물다가 잊혀지는 게 세상의 이치일까?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생이 저물어간다.’는 표현을 한다. 과연 언제부터가 저물어 가는 나이일까?
아마 중년 이후라는 대답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느덧 저물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정확하게는 저물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생기 있던 혈색은 온데간데없고 잠이라도 설친 날엔 여지없이 “어디 아파?”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찰랑찰랑 빛나던 흑단 같던 머릿결은 2~3주에 한 번씩 새치염색을 해야 하는 반백이 되었다. 소심하고 새침했던 소녀는 두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세상과 부딪치며 무서울 게 없는 용감하고 대범한 ‘천하여장군’이 되었다. 천하여장군은 아이들을 유해한 것들로부터 보호하며 교육에 심혈을 쏟고 고군분투하였다. 그리하여 둘째까지 태정태세문단세... 외듯 순위 매기는 소위 TOP 5 안의 대학에 보냈다.
그 후 한동안 사람들의
“어떻게 하면 그렇게 훌륭하게 키울 수 있어요?”
“교육 비결이 뭐예요?”
“이럴 땐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나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교육 전문가라도 된 것 마냥 조언해 주면서 왠지 모를 성취감에 우쭐하기도 했다.
자신의 길을 찾아 둥지를 떠난 아이들의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의 감정이 서서히 사그라들 때쯤이었다. 새끼를 알에서 부화시키고 만신창이가 된 가시고기처럼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숨이 차 계단을 오르지 못했고 산책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빈혈 수치가 1에 수렴했다. 갱년기라 여기며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대가였다.
모든 생활이 아이들 위주로 흘러갔다. 코로나는 합리적인 핑계였고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가족여행을 미뤄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엔 당당하게 가족여행을 갈 수 있었다. 여행지를 정할 때부터 몸과 마음을 휴양할 수 있는 곳에 중점을 두었다. 그런 기대로 괌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섬의 노을은 황홀했다.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세계 곳곳을 다녀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찬란한 노을이었다.
마치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사라지는 불사조 같았다.
‘저물어 가는 것 중 저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게 있을까?’ 찬란함을 사진에 담아보려 애썼지만 만족스럽진 않았다. 까만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시각각 변모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아름답게 저물어가는 인생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대단한 인생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있다. 또, 사람들은 누구나 마지막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하지만 매일 맞이하는 오늘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첫날이기도 하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누구의 아내,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로 저물어가고 싶다. 스스로 건강을 우선으로 여겨 부족한 체력으로 인해 원치 않은 상황을 만들지 말자. 건강한 신체야말로 아름답게 저물어가는 필수 조건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타인에게 너그러운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 모순적 표현이지만 인자하고 너그러우면서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의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 든 빛이 난다. 자만이 아닌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것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사고가 고착되고 더 이상 배움이 없는 사람은 고지식한 늙은이가 되기 십상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다가가지 않으면 혼자 고립될 뿐이다. 그동안의 많은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변화를 익힌다면 현명하고 지혜롭게 저물어갈 수 있다.
하루하루 건강한 몸과 이기적인 마음을 가꾸고 변화를 수용하는 지혜로 채워가자.
찬란하게 저물어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