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아버지는 대추나무 묘목 두 그루를 사 오셨다. 하나는 사과대추, 또 하나는 복조대추였다. 아파트 화단은 개인 경작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경비 아저씨들은 “안 되는데 안 되는데”라며 만류했지만,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경비 아저씨 사이에서 어색하게 서 있다가, 만 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여주며 담뱃값이라도 하시라며 상황을 무마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두 그루의 나무를 심고, 막걸리 한 잔을 드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 “5년이면 나무 모양이 잡히고, 10년이면 대추도 열리겠지…” 아버지의 말은 무겁고도 간절했다. ‘그 열매를 내가 볼 수 있을지’, 창밖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서늘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사 전, 우리는 작은 빌라에서 불편한 한집살이를 시작했다. 서로의 공간이 겹치며 갈등이 잦았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따로 사는 게 낫겠다”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갈등 속에서도 유독 손녀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셨다. 아버지의 퇴근길에는 항상 손주들을 위한 간식거리가 가득했다. 4살, 7살의 아이들은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할아버지가 빈손으로 오시는 날이면 서운함에 엄마 품에 안겨 “할아버지 미워!”라고 외치면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붕어빵을 양손 가득 사 오셨다.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오가던 한집살이 3년이 지나고, 우리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기보다는 나름의 질서와 원칙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아파트 1층이었다. 층간소음 문제로 아래층과 불편함을 겪었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 또한, 화초를 가꾸는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창밖으로 이어지는 화단을 마치 자신의 전유물처럼 만족해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법 열매가 맺겠다던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무를 심은 지 7년 만에 혈액암인 다발성골수종으로 6개월간의 투병 끝에 소천하셨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죽어도 저 대추나무 보면서 할아버지 생각해 줄 거지?”라고 하면 아이들은 “할아버지는 안 죽어. 그리고 죽어도 하늘나라 가면 또 만날 거야” 그 대답에 아버지는 “내 새끼 내 새끼”라며 흐뭇해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대추나무는 팔뚝 두께로 성장하고 수고도 3미터 넘게 자랐지만, 대추는 잘 열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아서도 실속 없더니, 죽어서도 그렇다”라며 혀를 차셨다. 대추가 열리지 않아 지인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가지치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분야의 문외한인 나는 어설프게 가지치기하다가 망치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열심히 거름을 주고, 더운 날에는 시원하게 물 샤워를 시켜주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비록 열매는 맺지 않지만, 푸른 잎이 광택을 내며 자라는 모습을 보며 그저 만족하고 있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처럼 아버지는 무능했고, 집보다는 밖으로 돌며 생활하셨다. 그런데도 세 명의 누나들이 정확히 2년 간격으로 태어난 것과 누나들의 생일이 6월에서 9월 초까지 모두 들어있는 것을 보면, 나가고 들어오는 간격의 일관성과 규칙성에 절로 웃음이 난다.
아버지는 가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아무도 안 울면 어떡하지? 죽어서 시원하다고 하진 않겠지?”라는 말에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핀잔해 주었지만, 아버지는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와 사람들의 평가, 특히 가족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셨다. 어느 날은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로 “내가 왜 네 새끼에게 잘하는 줄 아니? 젊었을 때 너희에게 너무 못했기 때문이야. 너희 엄마와 너희들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못한 게 많아 나를 기억하지 않겠지만, 내 손주들은 못 한 게 없으니 나를 기억해 주겠지”라고 흐느끼며 말씀하시는 그의 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는 죽음보다 잊히는 것이 더 두려운 것 같았다.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의 존재가 계속해서 기억되는 것은 그 사람의 유산, 기억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사랑의 기억은 그 사람의 존재를 계속해서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죽음 이후에도 기억된다는 것은 마음속에 살아남아 존재의 영원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버지는 잊힘을 죽음보다 두려워한 것이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했고,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 대추나무는 아버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열매가 맺히지 않아도, 그 나무는 그의 존재를 상기시켜 줄 것이다. 그의 유산과 기억은 초록의 광휘를 빛내며 오늘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