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은 대입을 마치고 성인이 된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술자리였다.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은 일이지만 늘 설레고 기대되는 자리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몇 명의 아이들이나 올까?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기대와 예행연습 같은 되뇜을 며칠째 하며 그날을 기다렸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제일 먼저 나타난 친구는 이름도 비슷하고 3년 내내 붙어 다니던 수영이와 소영이였다. 평소에 관심이 많던 의료분야에 진학하게 되어 취업의 걱정도 덜게 되어 부모님께 덜 미안하게 되었다며 조잘거리는 모습도 귀여웠다. 또한 수능을 앞두고 자기를 찬 남자 친구의 복수를 멋지게 하겠다고 거창한 포부도 말했다. 이와는 다르게 소영이는 수영이의 수다에 싱긋 웃을 뿐 말이 없다.
수영이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나타난 아이는 의예과를 꿈꾸던 유진이었다. 진지한 모습이고 교과서의 모범답안처럼 답을 한다 해서아이들이 놀리는 의미로 AI로 불리던 아이였다. 유진이한테 나는 두번 놀랐다. 공부만 하던 아이가 파마하고 화장을 한 모습이 나를 놀라게 했고, 그 자존심 세던 아이가 지원한 대학 모두가 낙방했음에도 친구들도 궁금했고,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자리에 나타난 것이 나를 두 번 놀라게 했다. 3년간 만나면서도 저렇게 깊은 속이, 저렇게 개성적인 아이를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우리는 살면서착각을 하는 것 같다. 내가 본 것만이 맞고 그 이외의 것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부끄러움과 놀라움이 교차할 무렵, “어머 샘.”하는 고음의 목소리가들렸다. 유난히 웃음도 많고, 울음도 많던 예린이었다. 한 번은 술에 대해 종류별로 맛을 표현하는데 그 표현이 너무 세련되고 구체적이 어서 소믈리에가 되어 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던 재미있는 기억이있다. 간호사관에 1차 합격하고 체력검정 통과를 위해 두 달간 체대입시 학원에 다녔으면서도 끝내 팔 굽혀 펴기를 한 개도 하지 못해 고배를 마시고, 인생의 실패자가 된 것처럼 낙심해 있던 모습이 선했다. 위로해도 울기만 했던 녀석이 앞으로 방송국 PD가 되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 나는 꼭 술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제작하라는 덕담으로 그간의 마음고생과 극복을 격려했다. 3개월 동안 예린이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으리라.
폼나는 제복을 입고 나이팅게일의 후예가 되는 꿈을 꾸기도 전에세상에 버려진 것과 같은 절망 속에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팅게일이 갑자기 나영석이 되는 것은 우리 입시가 만들어 내는 촌극과도같은 것이다.
다들 유쾌했고 앞으로 시작할 대학 생활의 기대와 재수 생활의 고됨을 서로 격려하며 의기투합하고 있을 무렵 잠자코 있던 소영이가 “샘! 저 열심히 살 거예요” 조금은 취기에 오른 듯한 소영이의 눈은 슬프고 단단했다. 예년의 경우라면 무난히 서울권 대학의 공학계열 에 갈 수 있던 성적이었는데, 코로나가 소영이의 발목을 잡았다. 여러 활동과 봉사로 진학의 발판 삼는 자사고 학생에게는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코로나 기간이 소영이의 불운이었다. 결국 안산의 H대학 분교로 진학하게 된 소영이는 슬픈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샘,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면서 다짐했어요. 고등학교는 오이도행을 타지만, 대학은 꼭 당고개행을 타겠다고……. 그런데, 또 대학도 오이도행을 타게 되었어요. 흐흐” 슬퍼야 할 그 소리가 유머처럼들렸는지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요즘 아이들 표현대로 말이 터진 소영이는 “샘, 심지어 알바도 오이도행이에요 흐흐” 아이들은 탁자를 두들기며 웃었다.
웃음과 울음이 섞인 소영이의 표정은 슬펐고, 자책하는 듯한 어투는 나를 무겁게 했다. 입시가 뭐기에, 대학이 뭐기에 갓 스물이 된아이들의 표정이 반백을 넘게 살아온 나보다도 깊은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듯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되어버린 세태는 재수를 한단 말 할 때는 고개를 숙이게 하고, 서울권의 대학은 진학한 아이에겐 더없는 찬사를 보내곤 한다. 입시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듯이 입시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본인의 마음도 아프면서 부모 님께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우는 아이들을 다독이는 것이었다. 소영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소영아, 오이도행이 끝이 오이도라면, 당고개행의 출발점도 오이도야. 아니, 너는 당고개행이 아니라 은하철도 999처럼 저 우주를 꿈꾸는 열차에 오르라고…."